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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태껸가족’ 전우칠·김길남씨네 사랑법

등록 2005-03-09 19:07수정 2005-03-09 19:07

강가를 거닐고 있는 전씨 가족. 김길남씨는 “온 식구가 다 함께 강가에 나들이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강가를 거닐고 있는 전씨 가족. 김길남씨는 “온 식구가 다 함께 강가에 나들이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한다.


우리것 전하며 이크 상생으로 에크

“이크, 에크, 엑! 이크, 에크, 엑!”

장단에 맞춘 발놀림이 날렵하다. 품새엔 절도와 부드러움이 함께 깃들여있다. 김길남(41·여·충북 영동읍 부용리) 3단, 전우칠(44·남) 3단 부부와 아들 덕운(13)과 딸 법(12)도 2단씩이다. 합이 10단인 ‘태껸 가족’이다.

부부가 처음 태껸을 접한 건 지난 2000년. 아이들에게 운동을 하게 시키려고 대한택견 영동본부를 찾으면서였다. 예전부터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이들 부부는 “아이에게 운동 한 가지를 시키더라도 우리 것을 권하고 싶었다”고 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 때문에 부부가 함께 운동을 시작했는데 태껸의 ‘능청맞고 굼실대는’ 동작에 반해 매일 5시간 동안 “남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수련했다”고 한다.

11톤 화물차 운전하는 아빠
늦깎이 한국화가 엄마
아들딸까지 합이 10단
이웃에 전파·부부는 감사패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서로 낮추고 섬기려 합니다
아이들 욕심도 내려놓았죠”

“태껸은 상생의 원리가 있어요. 남을 공격하기보다는 살짝 밀어서 상대가 제풀에 쓰러지게 하거든요.”

지난해엔 동네 아파트에다 무료로 ‘태껸 동아리’를 만들었다. 애당초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운동, 남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태껸은 무예이기 이전에 우리 고유의 문화고, 그 문화를 퍼뜨리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봤다. 마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사무실을 무료로 빌려줘 온 가족이 동네 사람 30여명을 가르치게 됐다. 덕분에 이웃해 살면서도 서로 남남이던 사람들이 ‘이웃 사촌’이 됐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모른 척하던 사람들이 차 한잔을 들면서 인사를 나누게 됐고,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던 아이들도 말뚝박기, 술래잡기 등 전래놀이를 시작했다. 동아리는 그야말로 동네의 놀이공동체, 생활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부부의 뜻이 씨앗이 돼 동네의 문화를 변화시킨 셈이다.

▲ 지난해 크리스마스께 아내와 남편이 서로에게 주고 받은 감사패. 부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세상에서 제일 큰 감사패”라고 했다.



태껸 지도를 하면서 부부애도 더 돈독해졌다. 지난해 연말에는 부부가 각자 하나씩 감사패를 주고 받았다. 하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다른 하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준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를 인정하며 자기의 소질을 발휘하여 그 성취한 바를 인정함”이라고 썼다. 아내는 남편에게 또 이렇게 답했다. “무지랭이 한 인간을 반듯한 반석 위에 세워준 그대에게 감사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추어올리는 데는 따로 이유가 있다. 사실 아내 김씨는 광주미술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화대전 등 각종 미술대전에서 다수 입상한 한국 화가다. 10년 전 무료 문화센터에 다니면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예 ‘화가’가 된 셈이다. 파, 아주까리, 갈대, 국화 등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이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은 모습을 주로 그리는데 그림 속 식물들의 모습은 탐스럽기도 하고 영롱한 기운까지 서려있다. 태껸과 그림을 통해 ‘결실’을 맺은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풍성한 행복을 나눠가졌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남편 전씨는 처음에는 말리기도 했고, 아내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껸으로 배운 ‘상생의 도’를 떠올렸다. “한 사람이 끼가 있어서 뭔가 하고자 저토록 애를 쓰는데 마땅히 도와주어야 한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이제 남편은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생계도 남편 몫이다. 영동에서 인천까지 11톤 화물차를 몰며 생계를 꾸린다. 그도 원래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스님들의 무소유 생활을 동경해 걸림이 없는 삶,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가정을 버릴 용기는 없어서 생활 속에서 ‘도’를 이루자고 맘 먹었다. 태껸을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화를 다스린 것이 도움이 됐다.

▲ 태껸을 하고 있는 전우칠씨 가족. 이렇게 온 가족이 태껸을 하다보면 한 겨울에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보통 부부들이 함께 사는 것은 힘들어요. 서로 바라는 게 있으니까요. 상대를 이해하고, 놓아주고, 배려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낮추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내는 11남매나 되는 형제들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다. 남편도 다른 형제들 때문에 20대 초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못다 한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 욕심도 내려놓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그랬듯 “마음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면 언제든 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또 이제 안다. 행복은 글자 한자, 돈 한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한 자락, 사랑이 담긴 손길 한번에도 스며있다는 것을. 자신을 공격하는 이조차 해치지 않으려는 태껸의 지혜를 이들은 일상에 적용하고 있는 듯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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