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에 ‘쌀 항아리’ 설치…“매달 100만원씩 보내겠다”
“아무리 없이 산다고 해도 끼니를 굶어서야 되겠습니까.”
도심 슬럼화 등으로 저소득층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대구시 중구에 ‘이름없는 사랑의 천사’가 나타났다. 사랑의 천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일. 이날 오후 2시께 90시시 짜리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중구 성내3동 사무소를 찾은 중년의 남자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71만4600원의 동전을 동사무소 직원에게 전달한 뒤 모습을 감췄다. 허름한 옷차림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당시 푼푼이 모은 100원, 500원 짜리를 전달하고는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성내3동 사무소는 “옷차림 등으로 미뤄 사는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 보였다”고 전했다. 이후 열흘이 흐른 지난 11일 그는 다시 같은 동사무소에 나타나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이 언제든지 쌀을 퍼갈 수 있는 ‘사랑의 쌀 항아리’를 설치해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동사무소에서 선뜻 그렇게하겠다고 동의하자 그는 즉석에서 쌀과 라면 등을 사는데 보태쓰라며 110만원을 내놨다. 그는 또 앞으로 매달 100만원씩 보내겠다고 약속한 뒤 서둘러 동사무소를 떠났다. 그의 당부에 따라 성내3동 사무소는 최근 사랑의 쌀 항아리를 동사무소 안에 설치하고 쌀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나 필요한 양만큼 퍼갈 수 있도록 했다. 성내3동 사무소 신창덕 동장은 “이 독지가는 자신이 중구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며 없는 사람들이 끼니를 굶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돈을 내기로 결심했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고 밝혀 중년의 이 남자는 당분간 대구 중구의 ‘이름없는 사랑의 천사’로 남게 됐다.
구대선 기자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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