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벽 하나 사이인데 이렇게 공기가 다르다니….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혼란한 기운에 눌려 호흡곤란을 일으켰을지도 몰라.’
목표점을 잊어버린 채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게 벌써 몇 시간째이던가. 좀처럼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는 회의의 정점에서 나는 그렇게 홀연히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유유히 회의실 문을 열었던 순간의 기분이란 거짓말 조금 보태 카타르시스에 가까웠다. 10분 가까이 복도를 서성이며 물 한 잔 마시고, 손 한 번 씻은 게 전부였지만 정신 상태는 회의실 내에서의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던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복원되어 있었다. 비록 곧 저 벽 너머의 공간으로 돌아가야만 하고, 또 얼마간은 뒤처진 진도를 따라 잡느라 헤맬지라도 앞으로 몇 시간은 더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충전했으니 오늘 탈출은 일단 성공이다.
물론 큰 혼선 없이 일사천리 결론에 도달하는 회의도 있다.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며 이후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나누어 갖고 회의실을 나설 때면 속이 탁 트이는 시원한 사이다라도 들이켠 듯 상쾌하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에 얽매이거나 자신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회의는 항로를 벗어난 배와 같다.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돌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풍랑을 염려해야 하는 표류선처럼 말이다. 그것보다는 마음을 다스릴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해법을 나는 고안해낸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딪힐 새 힘이 생긴다. 지금의 자리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다. 누군가 억지로 등 떠밀어 온 것이 아닌 이상 답답한 지금의 상황을 바꾸는 것 역시 내 의지에 달려 있다.
좁디 좁은 안장에 앉아 내려오지 못하고 페달을 멈출 수도 없다 생각한다면 자전거는 더 이상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꽤 먼 길을 가야 할 지 모른다. 끝까지 지치지 않으려면 힘을 지혜롭게 분배하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김정선/ <비굴클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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