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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천 만석동 ‘기찻길옆 작은학교’

등록 2005-03-23 16:53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 9번지에 ‘기찻길옆 작은학교’가 있다. 외벽의 큰 그림은 5년 전 정승각 화백과 공부방 아이들이 함께 그렸다. 벽화 속 아이들 앞에 지금 공부방 아이들이 다시 서서 웃고 있다.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 9번지에 ‘기찻길옆 작은학교’가 있다. 외벽의 큰 그림은 5년 전 정승각 화백과 공부방 아이들이 함께 그렸다. 벽화 속 아이들 앞에 지금 공부방 아이들이 다시 서서 웃고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잘 지내나?

코흘리개 아이는 자원교사 되고
물질속 찾지 못한 소중함을 위해
가난공동체는 민들레처럼 자란다
다음달 10일 공부방축제
6개월 준비한 ‘꿈’ 두둥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경쟁하는 ‘밖’에 나가서는 행복할 수가 없어요.” 자원교사 김수연 ‘이모’의 말이 귓전을 때렸다. 가진 게 없어 전혀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 남들만큼의 욕심은커녕 ‘부모님처럼만 살지 말자’는 게 유일하고도 절박한 목표라는 공부방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건 한편 아이들을 가두는 것이지 않을까.

‘부모님처럼만 살지 말자’ 목표

왜 남들처럼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노력하라고 독려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노숙자 출신 사장도 있고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다. 하지만 김중미 이모는 “그건 아주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다. 진짜 ‘가난’은 다르다고 했다. 우리가 듣고 본 가난보다 깊은 가난이 있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때까진 그런 대로 괜찮았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더니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그게 기억력 감퇴로 악화되더군요. 교문만 나오면 내준 숙제가 뭔지도 잊어버립니다.” 올해 중 2년생이 된 홍연희(15·가명)양의 증상이었다.

“공부방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에선 올해 학생과 학부모 모두한테 말썽을 안 부리겠다는 서약서까지 요구했습니다. 진짜 가난한 아이들은 말썽 피울 재주도 없어요.” 이 중학교는 그리곤 슬쩍 없는 일로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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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기찻길옆 작은학교’ 아이들의 가난이다. 이들의 가난은 계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도 못된다. 아버지들은 건축이나 목재, 부두 노동을 하는데 일 없는 날이 대부분이란다. 어머니들이 식당이나 대형할인점에서 일해 번 최소한의 수입으로 생활한다. 공부방 아이들 가운데 1990년대 후반까진 인문계고 진학생이 없었고 대학생도 2000년에야 처음 나왔다. 보통 사람들의 가치를 좇다가는 일상으로 좌절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은 다치거나, 심지어 누군가를 해하게 마련이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의 자립공동체를 꿈꾼다. 그곳에 이들만의 행복이 있다고 했다. 자원교사들이 이모, 삼촌이 되는 울타리를 가꾸며 ‘더 나은 현실’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것. 여느 가족과 같다. 남들보다 울고 웃는 변덕이 좀더 많을 뿐이다. “가난은 더디고 불편해요. 그래서 함께 부대끼고 나눌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서로의 삶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내 고민이 아니라 우리 고민이 되는 거죠. 시간, 옷, 아이들 키우는 법까지 모두 나누고 물려받게 되요. 함께 치열하게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기쁨도 커집니다.”(김수연씨)

20여년 전부터 시차를 두고 왔던 자원교사 가운데 여덟 부부가 탄생했다. 이 부부들이 아이를 낳고 공부방에도 보냈다. 가난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다. 그냥 가난하게 살고 있다. 수연씨의 남편인 유동훈 삼촌이 덧붙였다. “처음 ‘빈민 운동’이라고 생각한 이도 많았죠. 하지만 생활 자체가 안 되면 가난이 어떻게 행복한 건지 아이들과 얘기한 게 거짓이 됩니다.” 이들 부부에겐 딸만 넷인데 두 딸은 모두 자원교사 때 만났던 공부방 아이들이다. 맏딸과 다름없는 김재양(27)씨는 87년 공부방 문을 처음으로 두드렸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자신도 아이들의 ‘이모’다.

개발에 밀려 오므라드는 공부방

하지만 공부방은 자꾸 오므라든다. 만석동은 재개발이 예정된 지 오래다. 2년 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허름한 집은 빠르게 빌라로 변해간다. 공동 화장실이 줄어들었고 이젠 동네 사람들이 다투는 일마저 그립다. 올해 공부방 아이들은 38명인데 가장 적은 수다. 아이들은 묻기도 한다. “만석동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사회로 나간 이들이 지칠 때마다 공부방에 들러 되묻는다. “아무 것도 없고 진짜 갈 곳 없을 때 다시 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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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다고 가족이 사라지진 않듯 답은 항상 “가난한 자가 있는 곳 어디든 공부방은 있고, 언제든 와도 좋다”이다. 아이들은 사실 이모, 삼촌에게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귀한 스승이어서 더 그렇다. “약한 이들이거든요. 전쟁이나 이주노동자, 장애인 같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을 직관적으로 이해합니다. 어른들은 따지기만 바쁘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들떠 있다.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고 한번도 불려지지 않는 이들이 처음으로 제 이름을 갖게 된, 공부방 축제를 앞두고 있어서다. 15년 전부터 공부방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연극, 노래, 춤, 풍물 등으로 그들만의 꿈을 노래해 왔다. 다음달 10일, 6개월째 준비해온 올해 공연이 15돌을 자축하며 무대에 오른다. 연희는 지난해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도 되찾았는데, 올해엔 남의 대사까지 외워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인형극에 도전한다. 생기 잃은 만석동에 연습 소리 퍼진다. 수연씨의 말마따나 “가려져 있던 애들이 비로소 하나의 주체로 드러나는” 소리이고 행복이 꽃으로 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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