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우리만 너무 행복해서 미안해요”

등록 2007-05-09 14:18수정 2007-05-09 17:15

3년전 느리고 행복한 삶을 찾아 충북 제천으로 내려간 그림책 작가 신혜원씨가 만화 작가인 남편 이은홍씨와 함께 밭에서 골라낸 돌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천/김경호 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3년전 느리고 행복한 삶을 찾아 충북 제천으로 내려간 그림책 작가 신혜원씨가 만화 작가인 남편 이은홍씨와 함께 밭에서 골라낸 돌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천/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시골살이 3년 그림책 작가 신혜원씨네
흔히 ‘몸빼’라고 부르는 펑퍼짐한 바지에 검은색 털 고무신, 밀짚모자, 작업용 앞치마를 걸친 그는 영락없는 시골 아줌마다. 서울에서 자라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유명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글자없는 그림책>, <어진이의 농장일기> 등을 지은 작가 신혜원(44)씨. 만화 작가인 남편 이은홍(48)씨, <어진이의 농장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아들 어진(17)이와 함께 2004년 5월 성냥갑 같은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접고,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의 허름한 농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흙을 밟고 살기 시작한 지 이제 갓 3년이 지났지만, 시골살이의 즐거움에 흠뻑 취해 15년 가까이 자신들의 삶을 지배해 온 아파트 생활이 아주 먼 옛날 일로만 느껴진단다. 이들의 ‘느리고 행복한’ 일상을 살짝 들춰봤다.

서울 토박이, 탈출을 꿈꾸다
신씨는 서울 사람이다. 태어난 곳은 경북 의성이지만, 세 살 때 서울로 올라와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결혼을 하고 그림책 작가로 제법 이름도 얻었건만, 그의 마음 한 켠에선 늘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심이 꿈틀댔다. 드라큐라처럼 밤에 일을 하고, 해가 뜰 무렵이면 잠자리에 드는 단조로운 일상, 그것도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뤄지는 반복적인 일상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콘크리트에 갇힌 삶 탈출하는 꿈 꾸다가
“똥 치워도 좋으니 시골서 살자”는 아들 말에 보따리
제천에서 맞은 첫 아침은 몇년 산 듯 낯익더니
3년 지나도 텃밭·화단가꾸기 재미에 하루가 후딱

일부러 찾아 나서야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밖에 나가려면 남의 눈을 의식해 겉모습을 꾸며야 하는 삶이 싫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나서면 좁은 공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비로소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은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힌 도시인의 삶을 웅변해주는 듯했다.

그가 이런 강팍한 삶에서 탈출할 생각을 했던 것은 10여년 전부터였다. 그러나 시골 출신인 남편 이씨는 오히려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나마 시골 분위기가 나는 일산 외곽의 아파트로 집을 옮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때부터 주말농장에서 온 가족이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신씨가 남편, 그리고 아들 어진이와 함께 5년 동안 텃밭을 일군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묶어 펴낸 책이 <어진이의 농장 일기>다.

도시 생활에 지칠대로 지칠 무렵 마침내 탈출을 감행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아들 어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3년이었다. 어진이가 갑자기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였다. “엄마, 아빠! 똥을 치워도 좋으니까 변산공동체학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 어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년째 방학 때마다 대안학교인 변산공동체학교가 운영하는 계절학교에 참여해 온 터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그동안 결심을 미뤄 온 남편 이씨도 결국 아내와 아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 때부터 대안학교가 가까이 있고, 식구들이 새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도 적당한 지역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결정한 곳이 중·고교 과정의 간디청소년학교가 있는 제천시 덕산면이었다. 이듬해 3월 어진이는 이 학교에 입학했고, 이씨 부부는 두 달 뒤인 5월 덕산면 신현리 주민이 됐다. 간디청소년학교 학생 중 기숙사가 아닌 집에서 등·하교를 하는, 주민 자녀는 어진이가 유일하다.

몸에 꼭 맞는 옷 같은 시골살이
신씨와 이씨는 시골로 내려와 맞은 첫 아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깥에 나가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어젯밤에 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이 익고 포근한 거예요. 마치 몇 년은 산 집처럼요.”

신씨는 시골에 온 뒤의 자신의 삶을 ‘무념무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욕심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산다는 뜻일 게다. 신씨가 이 곳에 온 뒤로 4년째 쉬엄쉬엄 하고 있는 일이 있다. 700평 넓이의 마당에 산책로를 만드는 일이다. 먼저 20cm 깊이로 땅을 파고 큰 돌을 깐 뒤, 차츰 작은 돌로 차곡차곡 메운다. 날마다 텃밭과 화단을 일구면서 골라낸 돌을 깡통에 담아 옮긴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마당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완성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한을 정해 놓으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서 굳이 언제까지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신씨는 “길 닦으면서 도를 닦는 셈”이라며 밝게 웃었다.

시골 생활이 단조롭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손사래를 쳤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든 게 하루하루가 달라요. 나무를 보세요. 비올 때 다르고, 바람 불 때 또 다르죠. 나무 하나만 바라봐도 하루가 후딱 지나가요.” 신씨와 이씨는 “시골에 살다보면 소소한 얘깃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신씨를 졸졸 따라 다니다 어느날 사라진 두꺼비 얘기며 집에서 키우는 닭들이 일주일간 집을 나간 얘기, 처마 밑 둥지에서 태어난 제비 새끼가 처음으로 날개짓을 하는 “감격스런 장면”을 지켜본 얘기 등을 한보따리 풀어놨다. 얼마 전에는 나무로 만든 우체통에 박새가 날아와 둥지를 틀더니 최근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며 “요즘 박새 새끼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이렇게 느리게 살다보니 도시에 있을 때보다 ‘본업’인 작품활동에 들이는 시간은 아무래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산책로를 닦는 일부터 텃밭 일구기, 화단 가꾸기, 나무 심기 등 바깥일에 재미를 붙인 신씨는 낮 시간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낸다. 신씨는 “비가 와서 바깥일을 못하고 작업실에 앉아 있을 때면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든다”며 “작품활동은 여유가 되는 만큼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일량이 줄었지만, 대신 ‘적게 먹고 적게 싸면’ 되지 않겠느냐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다.

“이제 겨우 3년 살았는데 마치 평생 이 곳에서 산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요. 그만큼 행복하다는 얘기겠죠? 우리만 행복한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제천/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