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은 교무가 화랑고 교사 뒤편 소공원에서 김원식(왼쪽) 김희움 두 제자와 활짝 웃고 있다. 이 교무의 보살핌으로 가슴 속의 상처를 딛고 선 두 제자는 스승처럼 자신들도 한때 힘든 시절을 보낼 후배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왕따’ 와 ‘주먹’ 연꽃 미소로 피다 2001년 3월,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에 있는 대안학교 화랑고등학교에 두 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교문을 들어섰다. 언덕배기에 자리한 교정에는 여느 때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김희움과 김원식. 이 학교 행정실장 이형은 교무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열일곱 살 두 아이의 눈을 보며 그들 가슴 속의 거센 바람을 봤다. 이 교무와 두 아이의 사제간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화랑고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성 교육을 위해 원불교가 만든 대안학교. 여느 학교와 조금 ‘다른’ 아이들이 많다. 희움이와 원식이도 평범하지 않았다. 희움이는 한참 동안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도 싫어했고, 원식이의 눈빛은 적대감으로 이글거렸다. 이 교무는 두 아이 가슴 한 켠에 자리한, 작지만 쉽사리 아물지 않는 상처를 발견했다. 4년 전 바람부는 언덕에 온
열일곱 희웅이와 원식이
가슴 한편 상처탓 난동·패싸움 희움이. 중학교 1학년 때 모든 과목을 수만 받은 우등생이었다. 교수인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를 둔 유복한 집안의 외동아들. “시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지금은 태연하게 말하지만 이 교무는 희움이의 가슴에 난 생채기가 왕따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폐임을 알아챘다. 희움이는 한참동안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렸다. 수업시간이 시작돼도 기숙사에 처박혀 나오려 하지 않았다. 교사가 깨우기라도 할라치면 버럭 화를 내고 난리를 폈다. 교무실에 찾아와 “xxx들, 다 죽여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린 적도 여러 차례. 원식이는 가슴 속의 상처를 더 거칠게 표현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였고, 중학교 때는 축구선수로 활약한 그는 발보다 주먹을 더 잘 쓰는 그 학교의 이른바 ‘장군’이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편”이라,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하는 이야기를 하면 참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서 대구로 전학온 그는 낯선 환경을 ‘주먹’으로 이겨냈다. 신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패거리를 이끌고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도 자주 벌였다. 화랑고에 와서도 ‘버릇’은 여전했다. 다른 아이를 발로 차 이빨을 부러뜨렸고, 3학년 때는 동기생들을 모아 2학년과 패싸움을 벌여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원불교 수행 ‘마음공부’
이형은 교무 한해두해 기다림
마음을 열었다 책장을 열었다
이제 인연따라 스승의 길로… 이 교무의 말처럼 이들은 “화랑고의 제일 골칫덩이들”이었다. ‘마음공부’도 소용이 없었다. 인성개발을 위해 가르치는 ‘마음공부’는 원불교의 수행법으로 화 같은 불편한 감정이 일어났을 때 ‘앗! 경계다’라고 알아차린 뒤 차분히 그런 감정이 나오게 된 상황을 따짐으로써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평온한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학생 대부분이 거칠고 비뚤어진 심성을 버리고 맑고 밝은 본래 심성을 찾아갔지만 두 아이는 백약이 무효처럼 보였다. 이 교무에게 두 아이는 ‘숙제’였다. 틈나는 대로 희움이와 원식이에게 마음을 보라고 일렀다. 처음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타이르기도 하고 화도 냈다. 이 교무는 아이들 안에 깃든 순수한 마음을 믿었다. 어려서 겪은 상처로 마음 속에 꼭꼭 숨어있는 본래 마음이 언젠가 껍질을 벗고 밝게 빛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마음, 마음, 마음. 끊임없이 가르치고, 그리고 기다렸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흐르자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2학년 말쯤 희움이가 ‘마음공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먼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나의 부족함들 때문에 좌절했지만 그걸 인정하는 법도 배웠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원래 내 마음은 거대한 연못이다. 예전엔 그 깊이조차 내 자신이 부정하여 던져진 돌 하나에 너무나도 큰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 파문은 어느새 잔잔한 물결 위로 흔들리며 사라져 간다. 경이로울 뿐이다.” 기숙사에서 늦잠자며 나오지 않던 희움이가 제 때 수업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다른 학생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했다. 원식이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한 탓으로 공부에 집중하는 게 힘들었던 그가 마음을 돌아보며 공부에 매달렸다. 토요일 학교를 벗어나 놀러가고 싶은 ‘마음’을 바라보며 책장을 넘겼다. 학교 후배들의 행동이 못마땅해 ‘군기’를 잡고 싶다가도 “선배라는 고정관념도 경계에 따라 있어진다”며 스스로 마음을 챙겼다. 지난해 두 아이는 졸업과 함께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진학했다. “선생님이나 저처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요.” 이 교무는 말했다. 지금은 입학에 앞서 불교의 행자와 비슷한 ‘간사’로 화랑고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좌선을 마친 뒤 빗자루를 들고 1시간30분 동안 복도와 마당을 청소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다. 희움은 교내 매점일을 거들고 원식은 기숙사 부사감으로 후배들을 돌본다. 원식은 최근 입술이 부르터 갈라지고 피가 났다. 얼마전 학교 회의에서 후배들로부터 “부사감이 너무 설친다”는 말을 듣고 가슴에 치미는 화를 참느라 그렇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그 말한 후배를 사정없이 두드려팼을 겁니다.” 이 교무의 말에도 그저 미소만 짓는 원식이다. 성직자가 되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인연에 따라 되어졌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희움과 원식. 스승 이 교무를 닮아가는 제자들이다. 경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대안학교 경주 화랑고 1998년 너른 품 열고
학생·학부모·교사 3주제
자율·다양성 존중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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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버릴 아이는 하나도 없어요. 끌어안을 수 있는 교사의 힘이 부족할 따름이지요.” 서종호 교장의 말이다. 98년 문을 연 화랑고는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맑고 밝고 훈훈하게’라는 교훈처럼 학교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너른 품을 제공한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 대부분은 부적응 학생들이다. 부모조차 손을 든 ‘문제아’도 적지 않다. 술, 담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해댔다. 학교 유리창을 부수거나 교사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학교 교사들은 결코 아이들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누구나 삶에서 고비가 있다고 믿기에 스스로 어려움을 견뎌내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준다. 자신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인생에서 처음 만난 ‘어른들’로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바뀌어 간다. 화랑고는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해 다양한 교과 과정을 운영한다. 일반 학교에서 하는 교과 수업 외에 텃밭 가꾸기, 생태계 연구, 소록도 자원봉사, 지리산종주답사훈련 등등 현장학습이 많다. 인성 개발을 위해서다. 댄스부, 검도부, 목공예부, 밴드부 등 동아리활동도 활발하다. 학교 운영은 자율을 중시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 3주체가 모두 참여해 1년에 한 번씩 여는 ‘가족회의’는 모든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내 토론하고 답을 찾는 장이다. 화랑고에서는 ‘사고’를 쳐도 처벌 대신 교내외 봉사활동으로 갚도록 한다. 아침 좌선도 벌칙 가운데 하나다. 처벌은 인성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체벌은 일절 없다. 화랑고는 개인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수업을 포함해 대부분의 학교생활을 학생 자율에 맡긴다. 성과는 높다. 입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학생들이지만 졸업생의 9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진학율도 높다.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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