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장진 종이공장의 초지기(빠른 속도로 종이를 떠내는 기계)가 22일 교과서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이용해 재생 종이를 쏟아내고 있다.
한겨레통일재단, 공장 방문
낡은 설비·장비 교체 ‘착착’
낡은 설비·장비 교체 ‘착착’
‘제때 먹는 것만큼 제때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북쪽 어린이의 교과서·공책을 인쇄할 종이공장 현대화사업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방북대표단(단장·정은숙 이사·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 지난 22일 오전 재단이 지원하는 장진종이종장을 방문해, 공장을 둘러봤다. 평양 역포구역 안에 있는 공장 마당 한쪽엔 재단에서 배로 부친 현대식 종이 재단기, 이송장치, 지게차가 잘 정렬되어 있었다.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낡은 기계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에서 재생 종이가 밀려나오면, 직원들이 손으로 종이를 말아 큰 손칼로 종이를 절단하는 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만든 종이를 만져보니 한쪽 면만 매끈했고 다른 쪽은 꺼칠꺼칠했다. 공장 설비가 낡은데다 펄프를 조금도 사용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품질의 종이는 양면 인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교과서나 공책을 찍을 수 없다. 이 공장은 북쪽 교육성 소속 기업소로, 교과서를 만들 때 나오는 자투리 종이를 주원료로 하고 있다.
북쪽이 장진종이공장 현대화 사업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 요청한 것은 지난해 재단이 평양 어린이공책공장을 성공적으로 건설해준 것을 보고 난 뒤였다. 재단은 지난해 5월 인쇄기와 제본기를 남쪽에서 들여와, 평양 대동구역 영북동 평양고등도서인쇄공장 안에 어린이공책 공장을 완공한 바 있다. 이후 북쪽은 재단 쪽에 장진종이공장을 개량해 공책과 교과서 제작용 종이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종이공장 현대화 사업을 돕고 있는 박형기 오메가프린팅 대표는 “북쪽에서 매년 교과서 제작 때 3000t 가량의 자투리 종이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장진종이공장 설비가 낡아 800~1000t밖에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가급적이면 북쪽의 요구대로 3000t 규모의 생산을 할 수 있도록 공장을 재구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진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처장은 “식량 사정이 다급한데 한가하게 종이타령이냐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업을 하면서 ‘나는 굶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 공부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시키겠다’는 생각은 남이나 북이나 같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앞으로 장진종이공장 제지설비 현대화와 함께 북쪽의 교육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다. 후원 문의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 02-706-6008.
평양/글·사진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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