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낙과 사람들’ 최혜린 상임이사(가운데)와 회원들은 여성 가장들이 당당하고 떳떳한 직업인으로 홀로설 수 있도록 먹거리 명품 매장 브랜드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
바삭바삭 ‘꿈’ 을 구워…바짝~바짝 희망으로 최혜린(46)씨는 오늘도 꿈을 꾼다. 그는 여성 가장들의 자활을 돕는 비영리 민간단체 ‘아낙과 사람들’의 상임이사다. 여성 가장들의 홀로서기. 이혼, 사별, 남편의 사고 등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에게 환한 웃음을 찾아주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99년 이 모임이 만들어진 뒤 여성 가장을 돕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꿈은 현실과 너무 멀었다. 아이엠에프 사태로 자활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여성 가장들에겐 낯선 말이었다. 그로부터 6년째로 접어든 올해 그는 어렴풋한 희망을 본다. 지난 3월 ‘아낙과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과자를 유기농 매장인 유기농하우스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과자는 무농약 우리밀만을 쓴다. 매장이 2곳에 불과하고 월 수익은 아직 50여 만원에 불과해 3명의 인건비에도 턱없이 모자라지만, 올해 안으로 매장이 12곳으로 늘 예정이어서 연말이 되면 과자 사업은 안정기에 접어들게 된다. 과자 만드는 여성 가장들에게 100만원 가량 쥐어줄 수 있고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회원들에게도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최 이사는 기대했다. 최씨는 그동안 여러 곳에서 과자 납품 제의를 받았지만 터무니없는 수준의 마진을 요구해 거절했다. “그렇게 팔 과자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이 과자는 그와 여성 가장들의 미래다. 그는 여성 가장들의 당당한 자립을 꿈꾼다.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터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그는 먹거리 명품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첫 ‘작품’을 헐값에 넘기기는 싫었다. 이혼·사별·남편 뜻밖 사고 아픔 떠안은 살림에 주저앉은 여성들
동병상련 최혜련씨 99년 모임 참여…보통 과자와 케이크 수입 좋았지만
시행착오거쳐 ‘우리 것’ 사업 진척…“여성가장 공동체 만들고 싶어” 그도 처음에는 일반 과자와 케익을 만들어 팔았다. 아이엠에프가 터진 뒤 ‘아낙과 사람들’이 만들어졌을 때 이곳을 찾아온 여성들은 배운 기술도 가진 돈도 없었다. 그가 대출을 받아 과자와 빵 만드는 기계를 장만했고,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서울 지역 6개 대학의 협조를 얻어 학생회관 앞에 노점을 차렸다. 벌이는 쏠쏠했다. 한 사람이 한달 평균 120만~200만원을 가져갔다. “그대로 만족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김진 목사님이 대표로 오시면서 여성으로서 떳떳한 사업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셔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하는 사업은 살림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아낙과 사람들’은 우리밀 유기농 과자를 만들기로 했다. 몸에 좋은 과자를 만들어 소비자의 건강도 살리고 우리밀을 써서 농촌도 살리자는 생각에서였다. 몸에 좋은 과자를 위해 첨가물도 황설탕과 최고급 버터, 놓아 기른 닭이 낳은 유정란을 쓰기로 했다. 우리밀을 쓰기 시작하자 과자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우리밀은 가공성이 좋지 않아 “과자꼴이 나오지 않았다”. “속이 니글거린다, 너무 딱딱하다, 왜 이렇게 단 것이냐 등등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단맛 대신 우리밀의 고소한 맛이 나는 부드러운 과자가 나오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이번에는 비싼 값이 문제였다. 과거 한 봉지 500원하던 과자값이 4천원으로 뛰었다. 대학가 판매는 중단해야 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낯선’ 과자를 비싼 값에 사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유기농하우스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1년반 뒤. 지금은 여러 군데서 문의가 온다. 개인적으로 주문해 먹는 사람도 300여 명이나 된다. 최씨는 아토피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로부터 과자를 먹여도 아이가 몸을 긁지 않더라는 전화를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씨는 과자 사업의 활로가 보이자 또 다른 ‘명품’을 준비중이다. 무농약 우리콩으로 빚은 손두부다. 여기에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몇가지 식품만 더하면 그가 꿈꾸는 먹거리 명품점은 틀을 갖추게 된다. 이와 함께 삶에 지친 여성들을 위한 웰빙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여성들이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좌가 조만간 선을 보일 예정이다. 최씨가 이 일에 투신한 데는 그 자신이 여성 가장이어서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82년 부유한 집안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은 일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93년 다시 공부를 시작해 94년부터 한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으나 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뒤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때 ‘아낙과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돈벌이에 손하나 까딱않던 남편과는 몇 년 뒤 이혼했다. 그는 위자료로 받은 돈을 단체 사업에 부어 과자 가게 터를 얻었다. 다른 여성들에 비해 자신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상한 일도 많았다. 팔고 남은 과자를 몰래 집으로 가져가거나 물품 대금을 받아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 생일용 케익 30개를 만들었는데 한 여성의 남편이 찾아와 모조리 부순 적도 있었다.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그러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중년의 여성 가장들을 받아주는 직장은 거의 없습니다. 먹거리 명품점을 만들려는 이유도 그런 현실 때문입니다.” 최씨는 앞으로 여성 가장들이 한데 모여사는 공동체를 만들 꿈을 갖고 있다. “아파트 한 동을 모두 빌려 여성 가장들끼리만 살면 어떨까요. 아프면 서로 도와주고, 다른 집 아이들도 제 자식처럼 키우면서 오손도손 사는 그런 마을 말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씨는 오늘도 바쁘다. ‘아낙과 사람들’ 사무실은 (02)825-1080.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