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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족 휴식마을 촌장 “쉼은 문화예요”

등록 2008-09-29 19:09수정 2008-09-29 19:11

11월 문을 열 국내 2호 통영 이에스 리조트의 설계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클럽 이에스 이종용 사장. 지중해식 구조에 우리 초가집의 정취를 더하고자 불규칙한 곡선에 색감이 비슷한 여러 가지 기와를 올렸다.
11월 문을 열 국내 2호 통영 이에스 리조트의 설계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클럽 이에스 이종용 사장. 지중해식 구조에 우리 초가집의 정취를 더하고자 불규칙한 곡선에 색감이 비슷한 여러 가지 기와를 올렸다.
[느림과 자유] ‘클럽 ES’ 이종용 사장
유럽답사만 수십년…자연같은 별장형 리조트 지어
설계부터 문고리까지 ‘휴양문화 운동가’ 고집 가득
‘유럽 자전거 여행 때, 기차 안에서 한국에서 리조트를 경영한다는 아저씨를 만났다. 첨엔 약간 ‘뻥’ 같았다. 기업 대표라는데 검은 베레모를 쓴 옷차림도 허술하고 출장 중이라는데 수행인도 없고…하지만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아저씨의 말은 진짜였다. 멋진 정찬과 함께 2시간 남짓 들려준 아저씨의 말씀이 끝났을 때 우리는 저절로 기립박수를 쳤다.’ ‘자신이 경영하는 산 속 리조트에 일가친척들을 초대했는데 밤늦도록 술판을 벌이고 떠들자 규정을 어겼다며, 그 밤으로 모두 쫓아내 버렸다.’

그를 만나자마자 대뜸 ‘무척 괴짜란 소문을 들었다’고 무례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되돌아오는 대답이 외려 당황스럽다. “다 맞아요.” 그가 바로 국내 첫 별장형 회원제 리조트 클럽 이에스(ES)를 세운 이종용(67) 사장이다.

그는 리조트 회사 대표보다는 별명인 ‘촌장 형님’으로 불리길 원한다. 충주호를 돌다 보면 그 이국적인 전경에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산꼭대기 별장촌’, 10년 넘게 휴양 공동체를 이뤄온 충북 제천 ‘이에스 능강 리조트’의 회원 250명(가족 준회원 포함 1만여명)에게서 그렇게 불려온 까닭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성격이 모나고 못됐어요. 그러니 조직 생활에 맞겠어요?”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그런 성격에 하필 서비스사업인 리조트를 경영하게 된 계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채롭다.

32년 전인 1976년, 월급쟁이였던 그는 “도시가 싫어” 주말마다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는 게 ‘낙’이었다. 경북 왜관 출신으로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3년간 낙동강 변에서 땅콩 농사도 지었던 “촌놈”인 까닭에 서울과 대구 사이 어디쯤 ‘산+바위+소나무+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제천에 이르렀을 때, 마침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역 보상이 한창이었다. 수산면 능강리 주민들도 이주해 가면 쓸모가 없다며 마을 뒷산을 팔고 싶어했다. “수심 150미터의 호수가 생긴다면 전망이 금쪽같겠다.” 번쩍 영감이 떠오른 그는 평당 30원, 모두 280만원을 주고 금수산 자락 10만평을 샀다. “리조트니 콘도니 펜션이니 단어조차 모를 때였죠.”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능강리 리조트(위), 히말라야가 올려다보이는 네팔 데우렐리의 회원 전용 별장. 클럽이에스 제공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능강리 리조트(위), 히말라야가 올려다보이는 네팔 데우렐리의 회원 전용 별장. 클럽이에스 제공
그런데 7년 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충주호권 다목적 개발 계획’ 보고를 듣고는 개발 규모를 키우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 덕분에 그의 땅값은 무려 150억원, 6천배로 ‘뻥튀기’됐다. 재벌 그룹들이 현금을 싸들고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주신 9만원(애초 10만원 줬다가 1만원 되가져가서) 들고 세상에 나와 백만장자가 되다니!” 그날 무교동 한복판에서 낮술을 즐기며 한바탕 크게 웃고 난 뒤, 그는 결심했다. “직접 해보자. 자본은 없지만 생각과 그릇(터)이 있으니 더디더라도 가보자.”

그는 그길로 카메라 3대를 장만해 홀로 유럽 답사에 나섰다. ‘어차피 서양문명권으로 진입했으니 그 원형부터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맨 먼저 스위스를 둘러봤는데 경치도 멋졌지만 사람살이가 편해 보이는 게 좋았어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나무인 듯 바위인 듯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한달로 예정했던 현장 조사는 무려 10년이 걸려, 94년에야 능강리 리조트 건설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사이 그에게는 ‘휴양문화 운동가’로서 뚜렷한 철학이 세워졌다.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파괴가 아닌 건설을 하자. 개념도 목적도 기능도 없고 오직 돈만 보이는 리조트는 안 된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흥청망청’ 유흥문화도 안 된다. 현대인에게 쉼은 더 이상 소비가 아니다. 나처럼 머릿속 복잡한 중년 지식인들에게 고향 마을처럼 편안한 별장을 지어주자, 자연의 품으로 안겨 들어가도록 짓자, 기업도 인격과 품격을 지닌 존재다. 모범적인 공익체가 돼야 한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당장 자본력도 없고, 경험도 없는 한 개인이 이처럼 ‘비자본주의적인 구호’와 함께 직접 삽을 들고 나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장기 임대 뒤 재계약 또는 원금 반환’이라는 독특한 분양 방식으로, 한 채 두 채 차분히 ‘산속 호숫가 휴양마을’을 가꾸어갔다. 그래서 그 첫 작품인 능강리 리조트는 97년 1차 개장해 완공까지 5년이 더 걸렸다. 알프스 샬레풍의 빌라와 중세 유럽의 고성 같은 로지들이 들어서자, 입소문이 퍼져 차츰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회원 전용 원칙을 고집해온 덕분이기도 하다.

그 유명세 때문에 ‘괴짜’ 일화들도 여럿 생겨났다. 몇 년 전, 자신을 일약 ‘부동산 졸부’를 만들어준 은인이라 할, 전두환씨 일행이 능강 리조트에 묵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그는 ‘회원 전용 원칙’을 내세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난 그런 대통령 모릅니다.”

2000년께 국내 최고 재벌가의 큰딸이 강원도에 리조트형 골프장을 짓는다며, ‘국내 고급 펜션의 효시’를 답사하러 왔다. 그런데 그는 계단에 올라서서 위압적인 어조로 “괜찮네” 하더니 회사 전 직원 세미나를 하러 오겠다고 했다. 그의 대답은 “노(NO)!”, 그제야 상대는 고개를 숙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쉼은 문화예요”
“쉼은 문화예요”
그런 ‘악명’과 고집 덕분에 그는 뜻밖의 사업 확장 기회도 얻었다. 2002년 어느 날 당시 김혁규 경남지사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남해안 관광개발 계획을 구상하고자 헬기를 타고 전국을 답사하던 중 충주 호숫가의 리조트를 ‘발견’했단다. “어디든 입지만 고르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백지수표’를 받은 그는 평소 나폴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한려수도에 ‘바닷가 휴양마을’을 짓기로 했다. 다음달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단장이 한창인 그의 두번째 작품, 통영 미륵도 이에스 리조트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통영 리조트 역시 5년 넘게 걸린 것은 ‘밑그림부터 설계, 조경, 기왓장과 문고리 하나까지’ 직접 챙기고 맘에 들 때까지 바꾸고 또 바꾸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통영 리조트의 영감은 25년째 계속해 온 나홀로 답사에서 그의 발걸음이 가장 오래 머문 곳, 지중해의 사르데냐섬에서 따 왔다. 세계 최고의 부호들이 즐기는 해변 별장의 품격에, 새마을운동이 거둬가버린 고향 마을 초가지붕과 전통 정원 같은 한국 고유 정취를 담으려 애썼다.

그가 받은 ‘뜻밖의 백지수표’가 한 장 더 있다. 우연히 출장길에 능강 리조트에 묵고 감동한 알래스카 주정부의 고위 관리가 현지에 리조트를 지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2001년 히말라야의 관문인 네팔 포카라 인근의 데우렐리에 회원용 별장 9채를 지어 놓았다. 남태평양의 피지, 싱가포르의 빈탄,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에서도 터 매입과 법인 설립이 진행 중이다. 그렇게 국내보다 땅값은 훨씬 싸고 돈의 가치는 수십배 높은 미개발 지역을 골라 하나씩 늘려가다 보면 프랑스가 자랑하는 ‘클럽 메드’와도 맞붙을 ‘자신’이 있다는 그다. “내 꿈은 환태평양권에 최소한 10개의 휴양마을을 지어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들 ‘접빈객’의 정성이면 통할 겁니다.”

‘자유로운 몽상가이자 지구 여행자’를 자처하는 그는 순수한 꿈을 잃지 않고자 오늘도 밤새 <어린 왕자>를 읽는다.

통영/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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