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늘 혼자 남아 놉니다. 아이의 놀이터는 서울 변두리 주택가에 있는 초등학교의 운동장입니다. 해마저 교문을 빠져나가버리면 아이는 구름사다리 위로 올라갑니다. 본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봅니다. 시계의 작은 바늘은 4와 5사이에 걸려 있습니다. 7시가 되려면 그러니까, 아직도…멀었습니다.
이대로 구름사다리를 밟고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곧 고개를 내젓습니다. 상상하려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얼굴을 그곳에 간다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엄마가 아이 곁을 떠나던 날에, 아이는 그저 세 살이었습니다.
아이는 문방구로 가봅니다. 오락기 앞에 앉아 있던 4학년 형들 몇이 아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 보입니다. 아이와 어울렸다가는 부모님들께 혼쭐이 나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아이는 친구 집에 놀러갔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부모님은 네가 우리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니? 몇 시까지 간다고 말씀드렸니? 아이는 아버지는 삼척으로 돈 벌러 가셨고, 엄마는 세 살 때 돌아가셨고, 7시가 되면 할머니가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러 오신다고 대답했습니다. 설마 매일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친구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와락 껴안았습니다.
“요새는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애를 그렇게 놔두는 집은 없어요.”
“맞벌이를 하느라고 바빠서 그렇다면 학원에라도 보내지. 그렇게 내버려둔다는 건 아예 포기했다는 거잖아요.”
7시가 되도록 애를 혼자 내버려두는 집, 그런 집의 아이가 내 아이와 어울리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몇 몇 어머니들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 애들만 모아 방과 후 교실이라도 열어야 되지 않느냐, 어머니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단속했습니다. 이제 아이는 밤늦도록 혼자 학교 운동장에 남아서 노는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나만 홀로 버려졌구나, 아이는 달음박질칩니다. 늦게 집에 돌아와 아이는 할머니께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그 밤에 아이는 결심했습니다. 나 같은 거 영영 사라져주겠다고.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일을 나가자 아이는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아이의 책가방 속엔 물 한통과 돗자리와 돼지 저금통 한 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구름사다리 위로 올라가 하늘에 가만히 그려보던 엄마 얼굴을 꼭 한 번만 보고 떠나고 싶습니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던 아이는 놀라 교문 옆 가로수 뒤로 숨었습니다. 할머니가 구름사다리 앞에서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왼쪽 손으로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오른 손으로는 모래 속에 묻혀 있는 쓰레기들을 줍고 있었습니다. 모래 속에서 깨진 소주병 조각이 나왔을 때는 할머니는 흠칫 놀라며 혹시나 유리조각이 더 있지는 않나, 모래 속을 깊이 파보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할머니가 걸어갑니다. 할머니의 손에 검정 비닐 봉투가 들려 있습니다. 아이는 그 검정 비닐봉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압니다. 아이는 양말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밟아봅니다. 이른 아침 학교 운동장의 모래를 이토록 따뜻하게 달구어 놓은 힘이 무엇인지, 그쯤은 아이도 이제 알고 있습니다.이명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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