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형경(오른쪽),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박미라씨. 두 사람은 “핵가족의 형태가 늘어나면서 유년 시절에 상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줄어들고, 부모 자식이 상처까지 깊게 주고 받는다”며 현대인들이 가진 치유의 한계를 지적했다.
“우리와 나누는 감정, 그 안에 열쇠가…” 정신분석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캇 펙 박사는 “삶은 고해라는 석가의 말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진리”라며 “인간이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그 고통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이제 상담을 통한 치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도외시해온 남성중심적 정신분석학과 넘나들기를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은 동양사상과 만남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다. 여성들의 자기고백적 ‘수다’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고, 심지어 상담과 자기 고백을 외면하던 남성들까지 이 대열에 동참해 남성 대상 상담전문가가 생겨날 정도가 됐다. 이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은 인간 정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보편적인 준거틀로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겨레> ‘여&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가 자기치유와 원만한 소통에 대한 열망을 광범위하게 갖고 있다고 보고 상담 지면을 열기로 했다.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위원인 박미라씨가 친근한 상담자로 마음의 여행에 동참한다. 학계의 권위자가 아닌 이들을 선택한 이유는 탈권위와 벽허물기를 통해 소통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나름의 고민에서다. 두 사람은 오는 25일부터 <한겨레> ‘여&남’지면에 등장해 ‘형경과 미라에게’란 문패를 달고 상담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원고를 선보일 예정이다. 상담을 원하는 독자들은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2.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 으로 보내면 된다. 상담 지면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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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요즘 상담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고민을 털어놓지 않던 남자들도 자기성찰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은 것 같고요. 여자에 비해 남자들은 자기 고백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자기성찰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게 아닐까요. 남자들은 내담자 앞에서 기가 죽거나 어색한 것을 싫어하니까요. 김형경: 남자들은 소통을 하기보다는 혼자서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남성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목적 지향적이어서 감정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죠. 더구나 그들은 세상을 전쟁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사적인 정보를 노출하면 그것이 언젠가는 약점으로 작용하게 될 거라는 불안감이 있죠. 박: 시대와 혁명에 대한 진정성을 요구받던 386세대들이 사회변혁의 대안을 찾지 못하면서 명상이나 자기성찰 쪽으로 관심을 가지는 일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사회적으로는 핵가족화되면서 다각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해졌어요. 부모자식이 깊이 있는 관계를 나누기도 하지만 상처도 좀더 깊게 주고 받거든요. 상처의 유형도 비슷하고요. 어린 시절에 관계가 다각도로 이뤄지면 치유의 폭도 확대되지 않나요? 나를 들여다 보는 일 정말 힘들어
오랫동안 버려 뒀던 창고엔 먼지도 잔뜩 쌓여 있고
거미줄에 벌레들 우글
그게 무서워 외면하다보면 현실에서는 더 힘들어져 김: 바로 그 유년기에 형성된 의식의 지층을 자각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자기 치유의 핵심이죠. 지금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는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타인 때문에 느낀다고 생각하는 분노, 타인에 의해 촉발된 듯 보이는 모멸감, 열심히 일하는데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감정이 실은 이미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심리적 경향이라는 거죠. 상담이든 명상이든 수행이든 모든 방법이 우선 자신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자신을 알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치유이고, 그런 다음 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는 단계로 나아가는 거죠. 박: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를 바라볼 때 역지사지하려는 습관이 있었어요. 거의 강박적으로. 저 사람이 왜 나를 힘들게 할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공부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람들의 의논 상대가 됐지요. 직장 다닐 때 근무보다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안다고 해서 내 고통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고, 헌신적으로 남의 얘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보람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억울함은 여전했고, 진이 빠졌어요. 아, 나부터 돌아봐야겠구나. 그래서 본격적으로 집단상담 워크숍을 하면서 내 안을 더듬는 작업을 시작한 거죠. 김: 저는 이십대부터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맞춰 살기가 유난히 힘들다고 느꼈어요. 그것이 내면 세계와 외부 현실이 삐걱거리는 현상이었음을 나중에 알았어요. 내 안에 자기 자신에 대해 미화된 이미지,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이 지나치게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거죠. 20대부터 10년 동안 정신분석과 심리학에 대한 책을 읽었고, 그 끝에 직접 정신분석을 받으면서야 그 모든 것을 자각하게 됐죠. 정신분석을 받은 뒤 긴 시간 동안 외국 여행을 했는데, 그 여행은 해체되고 와해된 의식을 재구성하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그 과정을 거쳐왔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죠. 다만 어떤 갈등이나 문제 앞에서도 그 해결책이 손안에 있고 대체로 마음이 편안하다는 게 달라진 점이죠. 박: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은 정말 힘들어요. 오랫동안 버려 뒀던 창고에 가보면 먼지도 잔뜩 쌓여 있고, 거미줄에 벌레들도 우글거리죠. 그게 무서워 외면하다보면 현실에서는 더 힘들어져요.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은 채 사회로 나가면 더 고통스럽게 상처를 주고받으니까요. 김: 이번 원고를 쓰는 우리 자신이 아직은 많이 미숙한데 하는 걱정도 있는 게 사실이죠. 전문가도 아니구요. 갈등상황과 고통이 왔을 때 처리방법을 좀 더 안다는 정도랄까요. 단, 우리와 나누는 감정, 그 안에 열쇠가 들어있다는 걸 상담하는 이들이 잘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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