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경과 미라에게■
꿍한 시어머니…뭐가 불만인지 말을 안하세요 질문: 시어머니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납니다.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혼자 되신 분인데요. 아들에 대한 생각이 끔찍한 것은 이해합니다. 따로 사셔서 크게 부딪힐 일은 없는데 가끔씩 집에 들르시면 속을 긁어놓으십니다. 속상한 것은 제게 솔직하게 원하시는 바를 말씀하시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저희 집에만 오시면 음식을 먹은 뒤에는 속이 아프다고 하시고…. 밥상머리에 앉아 옛날얘기를 하시면서 어느 집에서는 시부모를 봉양 잘 못해 자식들이 모두 잘못됐다더라. 뭐 이런식으로 말하십니다. 저는 나름대로 잘 하느라고 노력하고, 또 시누이들과도 잘 지냅니다. 시어머니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시어머니의 태도 때문에 불편하시겠네요. 옛날처럼 대놓고 꾸짖거나 트집을 잡는 ‘전통적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가 어렵게 된 요즘 시어머니들은 불편한 기색을 은근하게 드러내거나 엉뚱한 요구를 함으로써 며느리를 통제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며느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통제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전혀 다르게 살아온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의사소통 방식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시어머니노릇으로 오해되기도 하지요. 원인이야 어찌 됐건 ‘터놓고 말하기’를 권합니다. 왜 시어머니가 그러시는지 한번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무엇이 불편하신지,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표현방식이 그동안 님을 어떻게 불편하게 했는지도 반드시 털어놓으세요. 불편한 감정은 참을수록 분노가 되고, 분노는 또한 죄의식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지고, 님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세상의 고부관계를 되풀이하면서 상처를 주고받게 될 것입니다. 고부갈등은 가족구조의 탓…강요된 ‘효’ 스트레스 벗고
왜 그런지 물어보세요…불편함 참으면 분노가 돼요 솔직하고 용기있는 시어머니라면 며느리의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하겠지만 짐짓 대답을 회피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앞으로는 그런 식의 표현을 자제하시게 될 것입니다. 혹시 효도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님 역시 시어머니와 대화할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점검해 보세요. ‘나도 며느리로서 완벽하지 못했다’는 죄의식 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강요된 효의식과 그로 인한 막연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세요. 님이 시부모에게서 느꼈을 이질감과 불편함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정은 오랜 시절 서로 노력하면서 생기는 것이지 지금 당장 솟아나는 게 아니니까요. 나 하나 노력하면 시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혹은 조바심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세요. 우리가 겪고 있는 고부갈등은, 여성들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가족구조에서 생겨난 것이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인간성 부족’이나 헌신성 부족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한 가족 내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다른 가족원에 비해 성도 다르고 지위도 다릅니다. 시아버지와 자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가족원이 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결혼한 뒤 며느리 혹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비로소 가족원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노력을 해서 뭔가 ‘성취’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여성들의 삶은 불안정하고 고단합니다. 그러니 가족 내에서 가장 파워가 있는 ‘아들’을 중심으로 한 힘겨루기가 필연적이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그야말로 뿌리가 약한 자들끼리의 권력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새 가족원이 된 며느리를 성공적으로 길들이기 위해 시어머니에게 ‘며느리 조련사’의 역할을 맡긴 것도 갈등의 원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한 많은 며느리’도 되고, ‘나쁜 시어머니’도 됩니다. 여담이지만 시아버지와 아들이 여성에 비해 대범하고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족 내에서 여성들보다 안정된 지위를 갖고 있으며,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는 골치 아픈 역할에서 비껴서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가족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감정적으로 매몰되지 마시고 관계를 관망해 보세요. 어느 지점에서 ‘남자들처럼’ 적당히 비껴서야 하는지, 언제쯤 ‘싫어요’를 표명해야 하는지, 또 어느 면에서 시어머니와의 정서적 연대가 가능한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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