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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두 사람 만난 뒤 삶만 공유해도 충분”

등록 2005-06-14 16:36수정 2005-06-14 16:36


■형경과 미라에게■

보수적인 ‘남친’ 에게 ‘과거’ 털어놔야 할까요

질문: 제 이중성 때문에 고민입니다. 저는 원래 성적인 문제에 대해 개방적이라 맘 통하고 몸 통하면 원나잇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면서 저 스스로 달라지는 걸 느끼게 돼요. 이제 제 나이 서른이니 결혼을 염두에 두게 돼서일까요. 의외로 제가 얼마나 조신한 척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차츰 시간이 가면서 스킨십을 시도하더군요. 그런데 좀 진한 스킨십을 시도하려고 하자 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였습니다. 난생 이런 일은 처음인 양 말이죠. 자신도 놀랄 정도였어요. 여하튼 남자친구가 너무 미안해하더니 그 뒤로 어찌나 젠틀하게 구는지…. 과거엔 남자친구와 섹스하는 것이 싫지 않았던 내가 왜 이럴까 고민해보고 지금 제 상태가 어떤지도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지금 그와 나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내가 그를 꽤나 좋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보수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난 거기에 맞춰 무척 내숭을 떨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나의 이중적인 면이 갈등을 느끼게 하네요. 나의 과거의 성적 스타일을 그한테 미리 고백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뭉게구름


답변: 과거 우리의 어머니 세대를 거쳐 우리 세대 여성들이 결혼을 앞두고 했다는 그 고민이,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여성을 둘러싼 결혼 환경은 달라진 게 없군요. 아니면 결혼 자체가 인간을 구속하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어서일까요?

뭉게구름님의 얘기를 읽고 있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님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젠틀하다’고 하는 당신의 남자친구도 과연 자신의 과거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까…. 뭉게구름님의 ‘조신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하셨지요. 비교적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지면서 살았다고는 하나 아마도 님의 어느 부분에 보수적인 면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 님은 ‘조신한 연애놀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젠틀한 신사놀이’로 조응하는 그와 일종의 역할극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역할이 그리 낯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관계에서, 그리고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늘 봐왔던 아주 익숙한 모습이니까요.

우리 사회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순결콤플렉스도 ‘조신한 척’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했던 여자가 결국 남자와 헤어지거나, 괴롭힘을 당하면서 불행해진다는 대한민국식 비극의 전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현실도 얼마든지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둘이 만나기 이전의 생활에 대해 묻거나 문제삼지 않으며, 과거의 모든 부분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도 갈등 없이 사랑하는 커플들 말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만나 사랑을 할 때 과거의 삶을 반드시 공유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털어놓고자 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 속에서 검열 당할 수 있는 여성의 성적인 문제 같은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서로 삶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은 둘이 만난 이후로 국한하셔도 충분할 것입니다.

만약 남자 친구가 님의 과거 성생활에 대해 굳이 묻는다면 실망할 만하긴 하겠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님이 그런 그에게 대답을 성실하게 해주겠다면 ‘아무 일 없었다’고 시침을 떼든지 또는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말하든지 님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상대가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해주는 것을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군요. 솔직하게 말하되 마치 고해성사하듯 한 태도로 시시콜콜하게 자세히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지요.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님이 당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 당신 스스로 당신의 과거 모든 삶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님이 자유로운 성관계를 가졌다면 아마 나름의 가치관이 있었을 것이고, 욕구에 솔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님이 과거 어느 지점에서 불행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이 성숙해졌을 것이므로 당신의 일생에서 감추거나 지워야 할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그를 사랑한다면 그 앞에서 당당해지세요. 그도 분명 당당하고 자유로운 당신의 모습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당신의 과거 삶을 문제 삼아 떠난다면 냉정한 말이지만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님도 잘 알고 있을 ‘행복론’을 새롭게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은 남자친구나 남편이나 자식이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죄의식이나 자기검열 없이 자유롭고 당당한 자기자신이 만드는 것이랍니다.

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형경과 미라에게’ Q&A 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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