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마을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실업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매일 바닷가를 지나 학교에 갔습니다. 소녀는 때때로 멈춰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여덟 살 무렵, 소녀에게 그 바다는 그저 기쁨이었습니다. 선주였던 아버지가 저 너른 바다를 두 쪽으로 가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소녀의 어깨엔 저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배 갑판에서 손 흔드는 아버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 당당했고, 아버지 등 뒤로 넘실대는 파도까지도 소녀에게는 만선을 축하하는 폭죽처럼 느껴졌지요.
열다섯 무렵, 소녀에게 그 바다는 기다림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바다에서 실종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그 바다를 건너 뭍에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섬으로 돌아올 때보다 더 헐렁해진 가방 하나를 들고 하루에도 몇 다라이씩 설거지를 해댄다는 공사장의 함바집으로, 소녀가 가 본적 없는 저 뭍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는 그래서 늘 소녀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열여덟이 되어, 소녀는 그 바다에서 막막함을 배웠습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소녀는 슬며시 교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수돗가에 나뒹구는 물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 배를 채우고 나면 소녀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그 작은 섬마을엔 눈길 닿는 곳 모두 바다뿐이니까요. 그 바다는 뛰어넘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그래서 소녀에게는 막막함이었습니다.
그 날도 소녀는 교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 그 웃음소리에 등 떠밀려 소녀는 수돗가로 달려갔습니다. 수돗가 앞으로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 바다에 떠 있는 멍텅구리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녀의 눈에는 그 배가 꼭 자기만 같았습니다. 노도, 돛도, 키도 없이 꼼짝없이 한자리에만 닻을 내리고 있는 배, 그러다 그냥 그 자리에서 썩어 없어질 멍텅구리 배를 보고 있으려니 소녀는 목이 탔습니다. 자신의 미래라는 것도 꼭 저럴 것만 같아서 애가 탔습니다.
소녀는 수돗가에 있는 물주전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 안의 물을 벌컥 들이켰지요. 순간, 소녀는 깜짝 놀라 물주전자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소녀의 바짝 마른 목을 축여준 것은 수돗물이 아니라 우유였습니다. 누군가 소녀를 위해 그 물주전자 가득 우유를 채워두었던 것이지요.
소녀는 우유가 든 물주전자를 꽉 쥔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막막한 바다뿐이던 소녀의 시야에 처음으로 바다 말고 다른 그 무엇이 들어차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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