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멀리 떼어두고 일주일에 5일, 홀로 지낸다
12년전 젓가락만했던 묘목들이 놀랍게 울창한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건방진 소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로 건방진 소리를 한 것이지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산 자락 자작나무 숲 속. 낡은 컨테이너집 처마 밑 평상에 걸터 앉은 그가 잡초로 덮힌 마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4년 전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책을 냈던 우종영(51)씨다.
책 제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무는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드는 최초의 생산자입니다. 인간처럼 번잡하게 움직이지 않고, 하늘과 땅의 기운만 받아 어느 생명체보다 오래 살아가지요.” 이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지를 닮겠다는 것 이상의 오만이 어디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 주 하루 낮 밤을 함께하며 들여다본 그의 생활은 그 고백이 지나친 겸양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내 주었다.
그는 집 주변 땅 2500여평에 직접 심어 가꾼 나무들과 더불어 세상 누구보다 ‘나무처럼’ 살고 있었다. 의정부에 가족을 두고 그는 요즘 일주일에 5일은 광덕산 자락 자작나무 숲 속에서 홀로 지낸다. 그곳에서 마치 나무가 햇볕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살아가듯이 늘 직접 지은 밥과 반찬 한 가지로 끼니를 때운다. 이따금 지인들이 막걸리통을 들고 찾아오는 날은 나무로 치면 기름진 거름 세례를 받는 날인 셈이다.
그곳에서 그는 나무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나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나무를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한 글을 쓰는 것도 주요 일과다. 15년 전부터 집 주변에 심기 시작한 20여종의 나무들은 이제 예전만큼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12년 전 젓가락만한 묘목으로 심었던 자작나무들은 이제 꾀꼬리가 둥지를 매달 정도의 숲을 이뤘다.
나무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그는 ‘나무의사’로 불리는 유명인이다.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은 나무들의 호소를 읽어내는 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지난한 노력으로 얻어졌다. 그는 천문학자의 꿈을 키우던 소년이었다. 자신이 색맹임을 뒤늦게 안 소년에게는 하늘의 별이 모두 떨어진 듯했다.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 고통스러웠던 소년은 땅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 땅의 별인 꽃과 나무가 있었다. 원예백과사전을 외울 정도로 매달렸고, 나무를 잘 돌본다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구했다.
지금까지 살려낸 나무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나무를 물었다. 아마 수십번도 더 받았을 질문일 터였다. 뜻밖이었다. 마지못해서 대답하는 투로 “살려냈다고 내세울 만한 나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저를 찾는 것은 대개 나무의 병이 말기까지 진행됐을 때입니다. 그러다보니 죽어간 나무에 대한 기억이 더 많습니다. 응급치료로 살아난 듯 보여도 그것이 나무를 근본적으로 살린 것인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기도 하고요.”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무의사’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아닌 부탁을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동물과 달리 나무는 병에 걸려도 금방 표현을 못합니다. 잎이 지고 가지가 마르는 등 누가 봐도 병이 든 것을 알 수 있을 때는 이미 회복이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상태이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그는 나무 한 두 그루를 잠시 구할 수 있는 ‘의사’이기보다는 나무를 올바로 사랑하는 법을 전파하는 ‘전도사’로 불리기를 원한다. 사람들에게 나무의 병이 중병으로 진행되기 전에 알아챌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나무를 소재로 동화 2권을 포함해 모두 5권의 책을 내고, 또 나무에 대한 종합 정보서를 준비중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광덕산 자락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그를 아무 때나 밖으로 불러낼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잠재적 가치가 뛰어남에도 수령이 200년이 안됐다는 이유로 보호수로 지정되지 못하는 나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나무들은 아무리 보호를 잘해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미래의 보호수감을 찾아내 돌보지 않으면 후손들은 바라보고 보호할 만한 나무를 갖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 일 가운데서도 그가 특히 정성을 쏟는 것은 전국 여러 마을의 정자수와 좀 더 자라면 정자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나무를 돌보는 일이다.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정자수 아래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정자수를 가진 마을과 못 가진 마을은 그래서 분위기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나무 상당수가 1970년대 이후 개발 과정에서 죽어갔습니다. 마을길을 넓히는 와중에 뿌리를 다치거나 주변 땅이 콘크리트로 덮씌워진 것 등이 원인이 됐지요.”
점심 식사 뒤 시작된 그의 나무 이야기는 백두산을 거쳐 몽골의 초원, 텐샨북로로 밤 늦도록 이어졌다. “먼 옛날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는 몸을 움직이는 쪽과 움직이지 않는 쪽으로 나뉘어 경쟁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 방향에서 각각 최고의 단계에 도달한 생명체가 인간과 나무입니다. 우리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움직이는 쪽의 고수가 움직이지 않는 쪽의 고수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기자를 배웅하며 그는 “사람들이 고수가 고수를 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무를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화천/글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가지치기 잘못하니 썩는다
우종영씨는 “길거리에서 썩어가는 나무들을 살펴보면 가지치기 잘못이 원인이 된 것이 태반”이라고 안타까와 한다. 그가 어디를 가든 작은 톱을 지니고 다니는 것은 이런 안타까움에서다. 가지치기가 잘못돼 병들 우려가 큰 나무를 만나면 틈나는대로 ‘수술’을 해주려는 것이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가지치기만 제대로 해도 많은 나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가지치기 방법을 ‘전도’하고 있다.
침엽수의 가지는 줄기에 바싹 붙여 자르면 된다. 문제는 활엽수다. 활엽수 가지를 자를 때는 잘라낼 가지에서 줄기쪽으로 비스듬하게 나 있는 ‘수피융기선’(그림㉠)의 위에서 아래로 가상의 수직선을 그은 뒤, 수피융기선의 각도만큼 벌린 선(그림㉡)을 따라 잘라야 한다. 잘라진 가지의 남은 부분이 길면 줄기의 껍질이 잘린 부위를 덮는 ‘유합’이 잘 안돼 줄기까지 썩게 만들수 있다. 잘려나가는 가지의 무게 때문에 줄기가 찢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아래쪽부터 먼저 톱질을 해놓고 위쪽에서 아래로 자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