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경과 미라에게■ 둘째 낳은 뒤 남편과의 잠자리가 싫어요 질문: 7살, 6살 두 아들의 엄마입니다. 결혼한 지는 9년째이구요. 둘째를 낳고 남편과의 잠자리가 싫어지더니 요즘은 1년 넘게 잠자리를 피하고 있습니다. 둘째를 낳고부터 몇년 간 권태기였는지 남편하고 무지 많이 싸우고 많이 미워했습니다. 요즘은 예전처럼 자주 싸우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지나치게 무덤덤합니다. 남자나 남편으로서 전혀 매력을 못 느끼겠고 오직 애들의 아빠로서 한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잠자리를 자꾸 피하니까 남편이 자존심 상해하고 화를 내는 게 문제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거절하면 남편이 혼자 삭이는 듯 했지만 요즘은 화를 내며 저를 다그칩니다. 병원에 가보자고 하며 종합병원에 예약을 하려는 것을 제가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며 미뤄 놓았습니다. 저도 고민이 많이 됩니다.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구요. 제 문제가 정신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문제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잠자리 문제가 해결되면 남편에게 무덤덤하고 어떨 땐 밉기까지한 마음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잠자리 없이도 평생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병원에 가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인 것 같고, 괜히 문제를 더 크게 많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선뜻 병원에 가게 되지를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출산 고통 생생할 때 남편의 섬세한 위로 없다면 성관계 서럽고 고역이죠
당신의 마음 먼저 얘기하세요
아내 원망에 긴장하겠지만 곤 성숙한 남편·아빠 될 거예요 답변: 아이를 낳아 본 사람이라면, 출산 직후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적 거부감과 불감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입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님에게 이런 말씀드리고 싶네요. “연년생의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분이군요.” 임신과 출산 과정 내내 경험하게 되는 육체적 변화와 고통을, 여성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일은 죽음을 연상시킬 만큼 큰 두려움입니다. 특히 출산의 경험은 어떤가요? 엄마의 질을 찢고 나오는 아이의 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젖몸살의 고통, 흘러내리는 젖, 아줌마처럼 바뀌어버린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은 자신의 육체…. 더욱이 연년생 아이를 낳았으니 가사노동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한 개인으로나 여성으로나 자신에게 미래란 것이 있을까 불안하고 우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런 느낌을 말해 본 적도, 섬세하게 위로받은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가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여성은 자신을 추스리고 위로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치유해줘야 할 사람이 바로 남편이겠지만 남편들은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출산의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치르는 남편과의 성관계는 서럽고 외롭습니다. 아내가 힘들 때는 아랑곳 않던 남자가 자신의 성욕 때문에 아내를 조르면 남편의 이기성에 몸이 떨리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한테 몸을 대주는 기계야?” 하는 설움에 명치끝이 아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쌓이고 쌓였던 분노는 결국 몸을 얼어버리게 만들죠. 성적인 느낌이 없는 성관계는 고역이고 고통일 뿐입니다. 그러니 밤이 무서울 수밖에요. 남편을 따라 병원에 가고 싶지 않은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병원에서 무감각하게 내려진 처방이 혹시 당신의 불감증에 ‘이상’이라는 딱지를 붙일까 두려울 것이고, 또 이쯤에서 대충 남편의 욕구에 맞춰 살기엔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사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해결책이 무엇인지 당신 자신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낮 동안 아이들과 갇혀 있었을 당신의 얘기를 들어준다면, 아이돌보기와 가사노동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준다면 그동안 힘들게 금욕생활을 했던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잠자리를 강요하기보다 출산을 통해 달라진 아내의 몸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었더라면 오히려 당신 쪽에서 먼저 성욕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마음을 대신 말하면서 수많은 기혼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해소한 기분입니다. 당신은 어떠셨나요? 제 얘기가 당신에게 다소라도 위안이 되었나요? 당신도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말해보세요. 여자들의 출산과 육아 경험은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평생에 걸쳐 군대 얘기를 하는데 인간을 탄생시킨 여성의 출산이 왜 중요하지 않겠어요?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하시고, 아니면 당신의 홈페이지라도 만들고, 그곳에 글이라도 쓰세요. 무엇보다 이 경험을 공유할 의무가 있는 당신의 남편에게 말해야 합니다. 남편이 당신과의 대화를 회피하더라도 구차하게 생각지 마세요. 아내의 원망이 두려워 처음엔 긴장하겠지만 어느새 당신의 얘기에 빠져들 것이고, 다 듣고나선 한층 성숙한 남편과 아빠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글/박미라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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