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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달리는 발걸음마다 나눔 마일리지 착착

등록 2005-01-19 17:39수정 2005-01-19 17:39

동시 통역사 마라토너 이상숙씨

“간헐적으로 양로원같은 곳에 기부를 했지만, 사실 돈만 전하는 것에 가까웠어요. 뛰면서 비로소 몸과 마음으로까지 나누게 됩니다.”

이상숙(51)씨는 마라토너다. 여성 세계기록 보유자인 폴라 래드 클리프가 2시간 17분에 42.195 km를 주파할 때, 이씨는 4시간 34분이 걸릴 뿐이다. 딱 두 배 느리다. 그가 ‘노느매기’를 본격적으로 실천하기까지도 이처럼 더뎠다. 하지만 이젠 누구보다 확고하다. 겨우 세 차례 완주한 ‘초짜’ 마라토너지만 뛰던 중에 찰나라도 나앉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지인들 합심 거리비례 기부
“누굴위해 달리나 생각하면 다리 아프고 숨찬줄 모르죠”

이씨는 본래 경력 20년이 넘는 동시통역사다. 얼마 전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태백 지역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짓는다는 ‘꽃때말 프로젝트’에 5백만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그런데 그 돈이 모두 마라톤으로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호놀루루 마라톤에 참석한 이 느린 마라토너로부터 꽃때말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인들이 뛴 거리에 비례해 킬로마다 천원에서 50만원까지 각기 형편에 따라 돈을 주겠다며 모여든 것. 함께 기부하고 또 함께 뛰는 셈인데 속도가 중요할 리 없다.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귀하다. 그래야 꽃때말 공부방에 책이라도 한 권 더 들일 수 있다. 폐광 마을 태백의 쓸쓸함은 버려진 탄광이 아니라 남겨진 아이들에게서 묻어나온다. 돈벌이를 찾아 부모가 큰 도회지로 떠나고 남은 아이들이 짊어메는 소외는 탈선으로까지 이어진다. 누굴 통해 세상을 볼 지 막막하다. 함께 놀고 공부하는 도서관은 절실했다. 아이들은 지금 공부방이 문을 여는 이달 21일만 손꼽고 있다.

이씨의 첫 나눔 마라톤은 2003년 호놀루루 대회였다. 2002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돕고 있었던 가난한 에티오피아 소년 레마(12)에게 돈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차였다. 편지와 함께 건네받은 사진 속 레마는 유독 맥없고 작아보였기 때문이다. “마라톤 소식을 전해주면 녀석이 좀더 기운 내지 않을까 싶었어요.”이때 이미 취지를 설명들은 지인들 40여 명이 ‘후원 배팅’을 해줬다. ‘얼렁뚱땅’ 자신의 첫 마라톤이었다. 5시간 12분. 기록치곤 길지만, 그만의 나눔 방식이 틀을 갖춘 시간으론 짧다. 일과 스트레스로 자신의 50여 년이 이미 쫓기듯 지난 뒤다.

“뛰면서 명상도 하고 후원을 약속해준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기도도 합니다. 왜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찰까 생각을 안하게 되죠. 마라톤을 통해 발에 대한 고마움도 알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만이 세상의 불화나 반목을 물리칠 수 있지 않나요?” ‘누굴 위해 달리나?’ 다음 대회를 앞두고 이씨는 또다시 장고를 시작한다. (02)783-5161. (‘꽃때말’은 월드비전 친선대사인 탤런트 김혜자씨가 빈민국을 돌며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줄인 것. 김씨도 이 책 인세를 모두 공부방에 기부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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