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경과 미라에게■ 매일 술 마시는 형부 때문에 언니 포악해져요 [질문]: 언니는 40대 초반이고 형부는 언니보다 4살 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딸 세 명을 둔 단란한 가정입니다. 형부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매우 착하고 맘씨 좋은 사람으로 평을 받지요. 그런데 술을 안 마시는 날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술을 마시면 이야기도 잘 하고 웃기도 잘 하지만 언니가 제지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십니다. 언니와 형부는 시장에서 함께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언니는 형부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을 쓰는데, 몰래라도 마셔야만 하는 형부를 말릴 수가 없습니다. 언니는 갈수록 포악해지고 악을 쓰고 사용하는 언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 되어 갑니다. 다행히 둘 사이에 육체적인 폭력은 없지만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는 언니를 보는 것도 힘들고, 갖은 언어 폭력을 당하는 형부도 안쓰럽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어린 조카들이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언니는 돈 버는 일만이 최우선이고 요즈음은 여행이나 휴가를 갈 생각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니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까요? (구름)
형부는 술에, 언니는 일에 ‘중독’…점점 서로를 소외시키게 되죠
악순환 끊는 건 결국 두사람 몫…등산·종교활동 등 함께 하며
술이나 일 대신 가족에 의지케 하세요 [답변]: 언니 가정에 대해 염려하는 구름님의 마음에 공감할 만합니다. 그러나 중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본인이 자신의 생활 방식이 중독 상태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굳은 마음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구름님이 언니 부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런 상태를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중독 상태임을 알게 해주세요. 형부에게는 자신이 술에 대해서 무력함을, 술로부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하세요. 형부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우울하고 불안해져서 거듭 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언니 역시 열심히 일할 때에만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인 듯 느껴지기 때문에 그토록 일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중독 성향을 강화시켜 왔습니다. 언니는 일에 매달림으로써 지속적으로 형부를 소외시키고, 형부는 술에 빠짐으로써 계속 언니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두 사람은 각자의 중독 대상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언니 부부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뿐임을 알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그들의 중독 성향이 진정으로 원하는 내면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도록 해주세요. 언니가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 진정한 이유는 실은 형부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이고, 형부가 그토록 술을 마시는 내밀한 이유는 비록 잔소리일지라도 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배려와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언니와 형부에게 자신들의 진정한 욕망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하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주세요. 또 한가지, 알콜릭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위험한 재앙인지를 설명해주세요. 어린 자녀에게 부모는 생존의 전부를 기대고 있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의 상태를 살펴 그에 적응하는 노력을 합니다. 부모가 음주 상태의 과도한 명랑함과 비음주 상태의 침울함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가정이 마치 태풍에 흔들리는 배처럼 느껴집니다. 혹시라도 음주 상태에서 아이를 상대로 부당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면 아이는 정서에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내면에 불안감, 죄의식, 자기 비하감이 자리잡게 되어 성인이 된 뒤의 삶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형부 역시 어떤 대상에 과도하게 중독된 부모를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언니 부부에게 그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해 주고 자식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세요.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기질은 의식의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치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심각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발적으로 삶을 주도해 나갈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선책이 있습니다. 중독을 초래하는 그 의존성을 더 긍정적인 대상을 향해 발현시키는 겁니다. 언니와 형부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를 닫고 함께 여가 활동을 하도록 권유해보세요. 어떤 여가 활동을 하든 꼭 가족이 함께 하시기를 당부합니다. 술이나 일에 의존했던 것처럼, 여가 활동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가족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등산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산에 다녀본 사람들은 산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신체적 치유력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정신 영역을 보살피는 데는 종교 활동도 도움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종교를 선택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법문이나 설교를 들어보세요. 종교 단체에서 마련하는 수련 행사에 참가해서 내면을 집중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김형경/소설가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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