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내 삶의 선물] 이별여행인줄 알았는데…

등록 2005-07-12 17:22수정 2005-07-13 02:06

역 광장으로 나가면서 그는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마음의 결심을 했지요. 오후 6시, 그녀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정동진에 가자고 했을 때부터 이별을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한 번도 떼를 써본 적이 없는 여자이지요. 그런데 그녀가 한사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오늘…, 꼭 일출을 보고 싶어.”

어쩌면 이 기차 여행이 그녀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함께 보고 난 뒤라면 내가 먼저 그녀를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그를 기다리는 그녀에게로 뛰어갔습니다.

그녀는 이 이별여행을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가 봅니다. 그녀의 핸드백 속에는 흰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고, 그녀는 그 봉투에서 기차표 두 장을 꺼내었지요. 그들은 청량리역에서 10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도 그들은 이렇게 나란히 앉아 나무와 슬레이트 지붕들과 누군가 와서 앉아주기를 기다리는 작은 역의 벤치를, 그들 곁을 스쳐지나가는 삶의 풍경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이제 서른네 살이 되어 그는 옆에 앉은 그녀의 손을, 대학 1학년 첫 엠티 때 만났던 그 여대생의 손을 잡아봅니다. 그녀의 이 예쁜 손에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사람이 자신이고 싶지만 그는 알고 있습니다. 동갑내기인 그녀는 그가 연극연출가로 자리잡기를 기다리다 서른네 살이 되어버렸고, 아버지의 반대에 못 이겨 요즈음에는 선도 여러 번 보았지요. 그녀의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라 해도 귀한 딸을 꿈 하나만 의지해서 사는 사람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기다려 달라는 말은 더 이상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꼭 오늘이 아니면 안 되었니?”

새벽 4시39분, 새벽 어스름에 도착한 정동진역에서 그가 물었습니다. 바다는 너울거리며 떠오를 태양을 미리부터 반기고 있었고, 해가 뜨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시작되겠지요.

대답 대신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 흰 봉투를 꺼냈습니다. 봉투 속에는 그들이 타고 온 무궁화호 티켓 두 장과 10만 원권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끊어주신 표야. 돌아오는 표는 예매하지 않으셨대. 언제든 돌아오고 싶을 때 당신이랑 같이 오래. 이 돈은 돌아갈 때 쓸 차비고….”

이제 막 그녀의 등 뒤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그는 보았습니다. 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