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좋은 사람이란 ‘가면’ 벗어버려요”

등록 2005-07-12 18:59수정 2005-07-13 03:07


■형경과 미라에게■

잘난 척 제 얘기만 하는사람들 지긋지긋해요

질문: 직장에 다니는 30대 후반 여성입니다. 직장생활은 13년차고요. 3남매 중에 둘째예요. 직장에서도 별 무리 없이 인정받고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지칩니다.

자기 말만 하면서 잘 난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재수가 없어요. (막말해서 죄송해요) 10년이 넘게 지금까지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 덕분에 일하는 것도 좋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지칩니다. 주변에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친구, 상사, 선후배들이 대부분 자기 얘기(자기 지식 같은 자랑)만 늘어놓는 데 질렸습니다. 며칠 전에는 거래처에서 온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걸 발견하고 너무 놀랐어요.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릴 뿐, 그 사람 얘기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상사나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만나기도 싫고, 얘기를 나누기조차 싫어요. 아무리 자기 피알 시대라지만,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친구나 선후배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얘기만 하고 남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싫어요. 대화를 할 때도 어느틈엔가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요. 때로는 내가 왜 사람들 사이에서 얘기를 못하고 늘 남의 얘기만 들어주고 있을까 고민할 때가 많아요. 제 얘기를 하려면 말이 잘 안 나와요. 이런 얘기 해서 뭐 하랴 싶고, 저 사람들하고 내가 똑같아지진다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말을 안 하다보면 정말 내가 말주변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고민도 돼요.

앞으로도 저는 제 얘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잘 난 척하는 사람들을 견디기는 더 어려워요. 저는 종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예수나 부처가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당신 자랑만 했다는 얘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잘 난 척하는 사람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민이)


지친다고 말문 닫지 마세요…상호작용 기쁨이 얼마나 큰데요
무조건 “옳다” 치켜세우지 말고 자기만의 대화 기술 훈련해요
‘나’ 다운 삶에 더 다가서는 거예요

답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자기 통제력이 느슨해지면서 자신을 멋지게 표현하고픈 욕구가 본색을 드러내지요. 그땐 상대가 지루함에 몸을 뒤틀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자기 얘기에 열을 올립니다. 물론 그들의 지나친 잘난 척 이면에는 잘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수치심이 숨어 있지만 말입니다.

세상엔 잘난 척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아랫사람에게 무조건 겸손과 존경을 강요하는 위계질서 또한 강고한 것이 사실이지만 왜 유난히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였을까요?

짐작하건대 한때 님은 잘난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동경했을 것입니다. 잘났다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어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들 앞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환호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더욱더 우쭐해져서 자제력을 잃고 자기를 과시하게 되겠지요. 그때 당신은 자신이 상대를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월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숨겨진 나르시시스트’들은 상대의 기분을 조종하고 통제함으로써 은밀하게 우월감을 맛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미 나르시시스트들을 유인하고 자극하는 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이 40을 바라보는, 13년차의 인정받는 직장여성, 게다가 가족이나 친구관계도 큰 무리 없는 생활. 님의 생활이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이젠 모든 관계를 재정립하고 싶어지셨군요. 잘난 척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일에 염증이 느껴지면서부터 말이죠.

어린시절, 님이 둘째인 데다 여자아이였다면 이리저리 치이느라 부모와 말할 기회도 적었을 것이고, 권리를 주장하는 일 같은 것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듯이 자라면서 당신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됐을 것입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말에 반응하고 호응을 하자 심지어 유능하다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애쓰던 당신은 이미 회의에 젖었고, 지쳐버렸지요.

하지만 잘 난 척하는 사람들에 지친 당신을 위로하는 대신 당신이 만든 대화의 틀에서 서둘러 벗어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당신은 이미 자신의 말문을 닫아버리기 시작했네요. 상호작용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주는 기쁨을 포기하실 건가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자기 자랑만 늘어놓은 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듣기만 하는 분들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님이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그들에게서 바로 그 점을 배울까 걱정됩니다. 윗사람의 횡포에 시달렸던 사람이 다시 그 횡포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듯이 말입니다.

내키지 않는다면 상대를 너무 치켜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항상 상대가 기분나빠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랫사람일지라도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다면 그가 제법 당차게 나와도 의외로 호소력이 있답니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기에 앞서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자기 스타일의 대화방식을 찾을 때까지 대화의 기술에 대해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도 좋겠지요. 익숙해진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일상을 낯설게 보기 시작한 당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당신은 보다 자기다운 삶에 한발 더 다가섰군요.

『소설가 김형경씨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박미라 편집위원이 지면으로 상담을 해드립니다. <인터넷한겨레> 행복한마을( http://happyvil.hani.co.kr )의 ‘형경과 미라에게’ 게시판이나 전자우편 sangdam@hani.co.kr으로 보내주십시오. 지면 상담을 꺼리시는 분들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형경과 미라에게’ Q&A 게시판 ◁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