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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차별없는 ‘무지개 나라’ 꿈 꿉니다

등록 2005-07-19 17:22수정 2005-07-19 17:31


문화나눔프로 참여 재한 몽골어린이들

부모는 강제추방당하고 한국 친구 무시 설움도
문화나들이에 함박웃음

15일 오후 4시 경기 양평군 한국방송광고공사 남한강 연수원. 지하 1층 연회실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도자기를 빚고 있다. 이들은 경기관광공사가 소외계층을 초청해 연 경기문화나눔프로그램에 참여한 재한 몽골 학생들이다.

아이들은 손길에 따라 흙의 모양이 바뀌는 게 신기한 듯 연신 탄성을 질렀다. 자기 차례가 오기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시시각각 바뀌는 흙의 모양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5학년 여학생 뭉근 똘가는 “너무 재미있어요”라며 소리친다.

‘나만의 도자기’를 만드는 행사도 열렸다. 초벌구이한 물잔에 그림과 글씨를 그려 넣는 시간. 컵 테두리에 예쁜 문양을 그리고 글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공 못지 않게 진지하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 사랑해요’, ‘I love Corea’ 등의 글과 몽골과 한국 국기 등의 그림으로 잔에 옷을 입혔다. 이 컵은 가마에서 구워진 뒤 아이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들의 도자기 물잔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이제 수영장으로 갈 시간. 아이들은 인솔교사의 지시에 따라 조별로 줄을 서기에 앞서 도자 행사 진행자에게 찾아가 “잘 배웠습니다”라며 깍듯이 인사를 한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학생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재한몽골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몽골 이주노동자 자녀들이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몽골인은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자녀와 함께 입국한 이주노동자 가운데 70% 가량이 몽골인이라고 한다. 이 학교 학부모의 상당수는 불법 이주노동자다. 상근 교사로 일하는 어트 공투야(43·여)씨는 “최근 두 달 사이에 아빠 8명과 엄마 4명이 강제로 추방당했다”며 “부모가 송환 당해 성인인 형제자매나 친척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도자 체험에 이어 물놀이와 조별로 겨루는 운동회.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모두 가슴에 작은 상처를 하나씩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형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한 남자 아이는 “한 달 전쯤 아빠 엄마가 붙잡혀 몽골로 돌아갔다”며 “아빠가 곧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학교가 없을 때 겪은 상처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리춤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7학년 오띠 어르세(14). 패션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어르세는 “어른들은 그렇지 않은데 학생들이 욕하고 무시할 때가 많았다”며 “좀 더 친절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처 때문인지 아이들은 몽골학교가 좋다고 한다. 차별도 무시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 가운데 성남, 인천, 의정부, 수원 등 먼 곳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등하굣길을 혼자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99년에 문을 연 이 학교는 이주노동자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한 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 3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몽골 정부가 인정한 몽골 밖에서 문을 연 최초의 학교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은 야외에 마련된 캠프파이어 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서 손을 잡고 노래도 부르고 조를 나눠 게임도 했다. 천체망원경으로 달과 별자리 관측도 했다.

“몽골인들은 징기스칸 때부터 한국을 설렁거스,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무지갯빛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트 공투야 교사의 바람이다. 양평/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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