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남학생 둘이 강원도의 한 공업고등학교의 교문을 차례로 나서고 있습니다. 먼저 교문을 빠져나와 도망치듯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남학생의 이름은 봉규이고, 봉규 뒤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남학생은 상기입니다.
상기가 가까스로 뛰어갔지만 봉규는 벌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오늘도 봉규를 혼자 보내고 만 것입니다. 혹시나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는 비겁함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상기는 스스로를 탓하다 뒤이어 온 버스에 올라탑니다.
먼저 간 봉규는 시내에 있는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상기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마자 걸음을 서두릅니다. 혹시나 상기가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하거나 “봉규야!” 하고 제 이름을 부르기라도 할 까봐 봉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봉규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쫓아가는 상기의 숨소리가 자꾸만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상기는 이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터벅거리며 걸어가 대로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노래방의 문을 엽니다.
“야! 최봉규 너!”
상기가 쫓아 들어와 봉규의 어깨를 거머쥡니다. 봉규는 피식 웃으며 리모콘의 시작버튼을 누릅니다.
“내 좋은 여자친구는 가끔씩 나를 보면 얘길 해달라 졸라대고는 하지.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며 말해달라지. 그럴 땐 난 가만히 혼자서 웃고 있다가 너의 얼굴 떠올라 또 한번 웃지.”
봉규가 노래를 부릅니다. 소위 말하는 왕따가 오히려 상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기는 오늘 또 봉규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린 것입니다. 오늘은 봉규의 생일이고, 상기는 함께 왕따를 당하더라도 오늘만큼은 남 앞에서도 봉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나는 봉규의 친구다!” 큰소리로 외치려 했던 것입니다.
“언젠지 난 어둔 밤길을 달려 불이 꺼진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는 들어가, 네 옆에 그냥 누워만 있었지. 아무 말도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어…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준 친구였고, 또 괴로웠을 때는 나에게 해답을 보여줬어…”
봉규가 넘겨준 마이크를 상기가 넘겨받습니다.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 노래방 한구석에서 덩치가 산만한 남학생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상기와 봉규는 알지 못해도 그 둘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외진 노래방을 벗어나 대로변까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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