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일컬어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부릅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 현상과 인화를 위한 필수 공간이던 암실은 사진기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다양한 취재 후기가 오가던 사랑방이었지요. 장비를 챙기며 나누던 대화에서 기획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현장에서 겪은 아찔함을 복기하며 다음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기기가 디지털로 바뀐 지금, 편집국에 공식적인 암실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그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사진기자들의 수다를 ‘암실 토크’ 연재로 전합니다.
2019년 5월 30일 밤(현지시각) 한국인 여행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헝가리 이름 두너강) 머르기트 다리 주변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이 다녀간 자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과 꽃이 놓여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단계적 일상 회복의 움직임이 이어지며 화상 회의 방식으로 진행되던 국제 외교도 오프라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G20 정상회의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 등을 위해 유럽 순방에 나섰다. 숨가쁜 일정을 담은 현장의 사진이 날아들던 지난 3일 새벽 전해진 부다페스트의 익숙한 밤 풍경 안에 대통령이 서 있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일정을 마친 문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헝가리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2019년 5월 우리 국민의 선박사고가 있었던 다뉴브 강을 찾아간 것이다. 사진이나 향기, 작은 물건-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2년여의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로 이어진 그날의 비극을 현장에서 지켜본 신소영 기자에게 물었다.
-허블레아니호 침몰 당시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과정은?
“평근자보다 일찍 출근해 밤사이 뉴스를 확인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조출 근무자였다. 먼저 해당 여행사 취재를 갔다가 데스크 지시를 받고 바로 출장 준비를 했다. 당일 직항이 없어 경유하는 항공권을 구하는데 자리가 부족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는데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보내온 첫 사진을 기억한다. 아름다운 다뉴브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현지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밝힌 촛불과 꽃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실종자들이 구조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도 애도로 바뀌었고 사고 발생 13일 만에 허블레아니호는 인양됐다.
“폭우로 강물이 불어난 상황이라 제가 도착했을 때도 수위가 높고 물살이 셌다. 사고 당시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다음날 날씨가 화창해졌다. 대형 사고 취재를 할 때 그런 마음들이 들지만, 역시나 믿기지 않고, 허무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 직후 헝가리 정부와 협력해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구조 활동을 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외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외국민대책본부가 설치됐고, 소방·해경·해군 등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신속대응팀이 헝가리에 급파돼 수색에 나섰다. 그 현장의 노력을 신 기자가 사진으로 보내왔던 그 때.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인양할 대형 크레인선 ‘클라크 아담’호가 2019년 6월 9일(현지시각) 저녁 사고 현장 주변에 정박해 있는 가운데 머르기트 주변에 실종자들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양이 임박하자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추모행사가 열렸다. 현지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노래를 부르고 다뉴브강으로 꽃을 띄워 보낼 때 함께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였기에 사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들에는 벌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누군가의 슬픔이 채 갈무리되기 전에 산 자들의 일상이 이어지던, 어쩌면 당연한 삶의 모순을 신 기자는 다뉴브강에서 지켜보았다.
남은 자들은 아직 저마다에게 남겨진 생을 살아내기 위해 일상을 이어가지만, 상처는 저마다의 깊이로 흔적을 남긴다.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삶 가운데 잠시 걸음을 멈춰 건네는 위로가 아주 조금이나마 그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를. 그 마음이 담긴 사진들을 여러분께 전한다.
2019년 다뉴브강 선박 침몰사고 희생자 추모비 뒷면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2일(현지시각) 헝가리 국빈 방문의 첫 일정으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 마련된 2019년 허블레아니호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아가 묵념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2일(현지시각) 헝가리 국빈 방문의 첫 일정으로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 마련된 2019년 허블레아니호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을 찾아가 추모했다. 추모비 위에 조화가 놓여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