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문화방송>(MBC)의 <100분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장동 의혹’ 에 답한 말을 몇몇 언론이 기사화했다. 사실 백미는 본방 뒤 유튜브로 계속된 생방송에서 패널인 우석진 명지대 교수와 이 후보가 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를 두고 8분 넘게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었다. 방송 말미 진행자인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요즘 많은 국민들이 후보들 진면목을 알 수 있도록 좀 더 집중적이고 깊은 토론을 갈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케이비에스(KBS) 9시뉴스>는 지난주 이재명·심상정·안철수 대선 후보를 연달아 불러 인터뷰 ‘대한민국의 내일을 묻다’를 20분 안팎씩 진행했다. 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소정 앵커는 연금개혁·건강보험 등 정책 질의를 내내 이어가다 맨 끝에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를 물었다. 케이비에스 메인 뉴스에 외부 인사가 10분 이상 생방송을 한 전례가 없거니와 ‘기사 제목이 나오는’ 현안부터 묻는 기존 문법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양대 지상파 대표적 토론 프로그램과 메인 뉴스는 최근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양 방송사 모두 경제·주식 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 티브이’(이하 삼프로)의 대선 후보 인터뷰 영향을 부인하진 않는다. 11일 현재 삼프로의 다섯 후보 영상 합계 조회수는 1200만회를 돌파했다.
지난 6일 방송된 <100분 토론> 영상. 엠비시는 이날부터 대선 정국 내내 백분토론 방송 시작 시간을 두시간 당겨 밤 9시에 방송한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삼프로 인터뷰에 대한 저널리즘적 평가는 언론계 안팎에서 엇갈린다. ‘노사모’의 인터넷 게시판부터 인터넷 언론,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들이 큰 선거 때마다 기성 언론이 예측 못한 현상을 일으킨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는 반응이 많다. 지속적인 언론 신뢰도 저하를 배경으로 레거시(전통) 미디어의 오랜 관행과 문법이 한계를 드러낸 점, 언론이 해오던 공론장의 역할을 유튜브가 분점하게 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언론사들도 적잖이 대선 후보 인터뷰를 해왔지만 삼프로 영상이 유독 화제가 된 데는 주요 후보들이 모두 등장했다는 점과 함께 포맷의 차이가 우선 꼽힌다. 선거보도 심의·규제 대상이 아닌 유튜브에선 발언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대답이 길어진다고 끊어야 하는 규칙이나 편성 제한도 없다. <100분 토론>을 연출하는 엠비시 김재영 피디는 “양자·다자토론을 하면 상대방 영향을 받아 외려 후보의 콘텐츠와 캐릭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삼프로는 (따로 인터뷰하면서도) 각자 개성이 살아나며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느껴진다. 유튜브 플랫폼은 같은 시각 업로드된 두 영상을 두 창에 띄워 비교할 수 있는 등 능동적 시청까지 가능하다”는 점도 짚었다.
출근길 라이브의 동시접속자가 5만명대에 달할 정도로 ‘투자 정보’라는 공통 관심을 가진 강력한 구독자 집단의 채널 삼프로에서 경제정책에 초점 맞춘 인터뷰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제 선택부터 어느 후보에게 유리한지 논란이 되기 십상인 기성 언론사와는 출발이 다르다. 일반 정치기사 댓글창과 달리 후보 식견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정제된 평가가 댓글의 대다수였던 것 또한 진영이나 정파성 대신 정보에 관심 있는 구독자들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는 “가짜뉴스 진원지 같은 유튜브 채널이 선거국면을 주도하지 않을까 우려들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정확히 이를 갈라서 보더라. 합리적인 유권자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유튜브여서가 아니라 ‘삼프로였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엠비시 한 국장급 간부는 “김동환·이진우씨는 원래 경제 실물과 방송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거기에 구독과 조회 수에 사활을 건 정글 같은 유튜브 시장에서 매일 몇시간씩 실시간 댓글에 반응하며 단련돼왔다. 그 정도 전문성과 치열함을 갖춘 현역 언론인 사회자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선후보의 잇단 특정 정보 중심 유튜브 채널 출연은 ‘양면성’을 가질 수 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삼프로의 경우 전국민의 관심사라는 주식과 경제가 테마였지만 교육이나 원전 같은 주제였어도 반응이 이 정도였을까? 후보들이 표 되는 시설을 방문하듯 특정 관심사만 이야기하게 될 수 있다. 대통령 후보의 종합적인 역량과 식견을 검증하고 의미있는 의제를 끌어내야 하는 언론의 공공적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칫 캐릭터나 이미지 정치를 강화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 일간지의 정치부장은 “삼프로 성공은 정책을 얘기해서라기보다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후보들 캐릭터가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발언을 ‘정제’해서 내보내는 기성 언론에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KBS 9시 뉴스’의 후보 인터뷰 모아보기 영상.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출연예정을 취소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하지만 이들 역시 삼프로가 후보들의 충분한 답변을 끌어낸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본다. 댓글 가운데는 “우리는 누군가의 뽑아준 기사 제목, 단편적인 사건의 전달이 아닌 후보의 생각·마음· 자세 등을 듣고 보고 스스로 고민을 해보는 기회가 필요했다” 같은 반응들이 많았다. ‘제목 나와?’ ‘새로운 말이야?’부터 따지는 문법, 후보의 말 듣기보다 패널들이 청문회처럼 ‘추궁’하는 게 검증토론이라 여기는 관행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이런 경고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전문가들은 ‘독자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알고 그 사안을 충분히, 매체별로 차별성 있게 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고 말한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레거시 미디어는 이제 망했다’ 같은 평가는 과장됐다. 언론들이 차별성 없는 뉴스 조각을 내보내긴 하지만 ‘덩어리’로 사실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여전히 권력이다. 함정은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갇힌다는 거다. 예를 들어 ‘비호감 대선’이란 말을 언론들이 쓰는데 대안 없이 정치염증만 유발한 건 아닌가. 삼프로는 ‘그래도 새로운 게 있더라’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언론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이유로 안전한 방식의 ‘기계적 균형’에 매몰돼 심층성을 제대로 구현 못 해온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 1990년대와 2010년 이후 선거보도를 비교한 연구들을 보면, 따옴표를 사용한 중계형 기사들과 동정·상대방 비방·판세분석 등 전략 프레임을 채택한 기사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경향이 확인된다.
언론들도 이런 요구에 대한 나름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임장원 케이비에스 통합뉴스룸 국장은 “선거보도엔 검증·동정보도, 의제분석 보도가 다 있기 때문에 단일기사가 아니라 일정 시간을 두고 전반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동안 언론들이 정치권에 정책을 내놓도록 ‘사회적 압박’ 역할을 못 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연속 정책인터뷰를 기획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획의 경우 첫날은 다소 ‘나열식’ 정책 질문이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후보별 정책의 초점이 살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뉴스에선 상당히 긴 20분이었음에도 시청률 또한 오히려 다음 꼭지보다 내내 높게 유지됐다고 한다.
한겨레가 만 18~35살 청년독자 100명을 모아 후보 캠프와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청년 5일장’. 6개 주제를 두고 대선 직전까지 ‘댓글 토론’을 이어간다. 누리집 갈무리
엠비시는 <100분 토론> 방송 시작을 두시간 당겨 대선 시기 내내 프라임타임대인 밤 9시에 배치하기로 했다. 정책의 초점을 좁혀 패널 두명이 집중적으로 묻는 방식과 유튜브 후방송도 도입했다. 지난 6일 이 프로의 2049 시청률은 당일 전체 방송사 프로그램 중 9위를 기록했고, 본방 뒤 이어진 유튜브 방송의 동시 접속자 수는 13만명에 달했다. <한겨레>의 ‘나의 선거, 나의 공약’ 시리즈나 청년 100명을 모아 후보 캠프와 토론을 벌이는 ‘청년 5일장’, <경향신문>의 후보 공약 탐구 게임 ‘대선거시대’처럼 독자들이 정책을 ‘가까이’ 느끼도록 하기 위한 신문사들의 시도도 시작됐다.
경향신문이 선보인 후보들의 공약 탐구 게임 ‘대선거시대’. 누리집 갈무리
이런 노력이 언론 수용자들의 반응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삼프로 현상은 유튜브 정보 채널이 ‘공론장 제공’이라는 언론 영역까지 넓어진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오랜 취재 경험과 데이터, 조직력은 기성 언론의 강점이지만 문제는 수용자들이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원 실장은 “언론이 정치권 등 취재원, 데스크, 경쟁기자들 평가에만 민감하지 않았나. 자신들의 독자가 누구고 뭘 원하는지, 독자와 ‘신뢰’ 자산을 쌓아왔는지 절박하게 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김영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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