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 주주는 2021년 5월 명예퇴직 기념으로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했다. 심창식 주주통신원 제공
1987년 월급 8개월치 창간기금 내
2012년 ‘한겨레’ 인터뷰 기사 계기로
‘선생님, 통일이 뭐예요?’ 펴내기도
지난해 명예퇴직 제주도 자전거일주
지역매체 무보수 상임이사로 봉사
통일교육위원도 맡아 ‘평화’ 강의
한겨레신문사 본사를 방문했을 때 6만 7천여 명의 주주 이름을 새긴 동판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 ‘
1호 주주’로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정경호 주주다.
1987년 ‘새신문’ 창간기금 모금 때 교사였던 그는
월급의 8개월치에 해당하는 250만원을 내놓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5·18’ 영령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기에 3년 동안 저축한 돈 전부를 선뜻 내놓은 것이다.
한겨레신문사 설립 속보를 전한 <한겨레신문 소식> 1988년 1월22일치에 ‘한겨레 주식 교부 제1호’의 주인공 정경호 교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신문사 본사 사옥 2층 입구에는 1987년 10월 새신문 창간 발기인부터 설립 기금을 출자한 창간 주주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전시되어 있다. ‘주권 1호’ 정경호 주주의 이야기가 실린 <한겨레신문 소식> 제5호의 동판.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언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에 <한겨레> 창간은 기다리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 그의 부친은 한학자여서 순한글을 내건 <한겨레>가 한자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을 보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신문을 끊지는 않았다. 2005 년 부친이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했을 때, <한겨레>에 실렸던 아들의 인터뷰 기사를 오려서 보관해온 것을 보고 그는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부모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와 나는 한겨레 주주들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 매체인 <한겨레 : 온> 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만난 ‘사회 친구’이다. 그는 소탈하면서도 시대적 소명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는 교직 생활을 하면서 권위적인 학교 문화에 심한 염증을 느껴 전교조 활동을 하였다. 교장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아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물론 교장들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 머리로 깨우치고 마음으로 다진 것이 있었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경호 주주가 2021년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하고 있다. 심창식 주주통신원 제공
2012 년 <한겨레> 가 ‘대선 정책 제안 만민공동회’ 행사를 열었을 때 그의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38선과 휴전선이 겹치는 분단의 상징적 지역인 경기도 연천에 국제평화지대를 만들자” 라고 제안한 그의 기사를 보고 살림터 출판사 대표가 연락을 해왔다. “혹시 책을 써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통일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습연구년제’ 를 신청해 1 년간 학교 근무 대신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대북협상과 남북교류 사업 등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채록하며, 그는 나름대로 통일비전을 세우게 되었다. 그렇게 써낸 책이 <선생님 , 통일이 뭐예요?>이다 . 그는 책을 낸 2013년을 ‘가장 뿌듯한 한 해’로 기억했다.
그는 36년간 역사교사로 재직하다가 지난해 2월 명예퇴직했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우쳤다고 한다. 하나는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서 해결해 나가는 데 언론의 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통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퇴직 후
지역매체인 <순천광장신문> 상임이사를 맡았다. 무보수 직책이지만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는 신념을 실행하고자 참여한 것이다. 아울러 통일교육 강사와 통일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통일에 대한 강박관념 대신, 통일을 이루기까지 우리 민족의 미래와 감당해야 할 부담까지 더불어 얘기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경호 주주는 2021년 5월 제주도 자전거 일주 때 친구 2명과 함께 ‘여순 특별법 제정’ 몸자보를 배낭에 두르고 달렸다. 심창식 주주통신원 제공
최근 그는
자전거 타기에 푹 빠졌다. 평소 약한 편인 무릎관절에 자전거 타기가 좋다는 말에 시작했단다. 레저용 차량 (RV) 뒷좌석을 접고 자전거를 싣고 다니면서 안전한 길을 만나면 언제든 내려서 타고 간다. 멋진 풍광을 보며 자전거 타는 기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남녘에서도 봄이 가장 빨리 오는 광양 매화마을 인근을 지나며 은은한 매화 향에 취해 섬진강 풍경을 바라보는 ‘호사’도 즐겼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5월에는 친구 3명이 함께 '여순특별법 제정 촉구'라는 몸자보를 배낭에 두르고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환상 자전거 길 ’을 완주하기도 했다.
‘
숨 가쁘지 않은 느긋한 기다림이 좋다’고 말하는 그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미리 씨앗을 묻어두면 어느 순간 싹이 터 나무로 자란다’며 은퇴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다시 한 번 그의 명예퇴직을 축하하고, 인생 이모작의 꿈과 계획이 나날이 영글어 가기를 응원한다.
친구/심창식 주주통신원
원고료를 드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5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또 함께 성장해온 주주들에게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