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수첩> 성기연 피디가 문화방송 소속 언론인들이 개인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국정원 문건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영희 기자
피해자는 지금도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가해자는 “기억이 없다”고만 했다.
지난주 <문화방송>(mbc)의 <피디수첩> ‘국정원과 언론장악’ 편을 보고 나서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원세훈의 국정원이 언론사와 프로그램 탄압 공작을 펼치고 언론인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을 실시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최승호 전 문화방송 피디(현 <뉴스타파> 피디)가 개인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2건의 문건을 받기 전까지는 그 하나하나 내용은 제대로 공개된 게 없었다. 하긴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이 나선 공개청구에 국정원이 응하기 시작한 게 고작 재작년 말이다.
이번 방송은 최 피디 청구 이후 엠비시 소속 언론인들 10여명과 <피디수첩>이 엠비시 법인 이름으로 낸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152건의 문건을 바탕으로 석달여 취재 끝에 만들어졌다. 최근 서울 상암동 엠비시 사옥에서 만난 성기연 피디 앞에는 그동안 수없이 줄 치며 읽었던 500여쪽 문서가 쌓여있었다. “청구 보완요구가 오면 다시 보완해 청구하고 자료가 늦게 추가되면서 방송 구성을 바꿔야 했다. 중간에 다른 편을 하나 만들고 다시 매달리기도 했다. 특히 설 연휴 직전에 도착한 일부 내용은 실질적으로 나흘밖에 취재 시간이 없었다. 구성작가와 고시생처럼 밤을 새워가며 검토하고 검증취재를 해야 했다”고 한다.
피디수첩에서 12년 동안 몸담았던 정재홍 작가에 대해 ‘대공차원 내사 필요’라는 결론이 적힌 문건이 나온 것은 성 피디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학생운동을 비롯한 그의 과거 행적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그는 피디수첩의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의 구성을 맡았던 작가다. 2012년 당시 영상에서 그는 6명의 피디수첩 작가들이 한꺼번에 교체된다는 통보를 듣고 자리에 돌아와 번번이 하려는 아이템이 꺾일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자리에 걸어놨던 걸개그림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국정원 문건을 이메일로 받은 정 작가는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간첩’으로 자신을 봤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후 5년간 정 작가는 다른 시사프로에 피디들이 함께 일하려 해도 번번이 위에서 반대해 가명으로 일하거나 동물원 관련 다큐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생계유지조차 어려웠던 시간이다. 성 피디는 “이 문건이 어떤 과정으로 작성됐는지 추가내사로 이어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기에 예단하지 않으려 했다. 엠비시를 담당하던 국정원 아이오(IO, 정보담당관)의 순수 개인 의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엠비시 정식 직원이 아니었던 정 작가의 이런 세밀한 과거 이력이 어떻게 적힐 수 있었을까 의문은 남는다. 이건 엠비시도 알 수 없는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제일 약한 고리인 사람들까지 이런 대상이 됐다는 게 화가 났다”고도 했다.
피디수첩이 방송에서 말한 대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름이 지워지거나 00로 표시된 문서들을 넘기다 보면 이 한줄한줄 뒤에 얼마나 많은 모르는 사실이 숨겨있을까 싶다. 주요 내용이 이전에 공개됐던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전문을 포함해 150여 문건 곳곳엔 깨알같이 예능·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출연자들까지 집요하게 ‘고사’시켰던 흔적이 가득하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만든 피디와 담당 시피가 ‘피디수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달의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올해의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엠비시 교양 피디라면 대부분 피디수첩을 거치는데 말이다. 언론사 동향이 종합 언급된 것들을 보면, 엠비시 외 다른 방송사 관련 문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2009~2010년 당시 성 피디는 입사 10년 차로 피디수첩의 주니어 피디였다. “그땐 위에서 싫어한다는 건 알았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이름은 없었지만 내가 만든 방송 세편이 언급된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당시 유독 열올리며 말도 안되는 이유로 거부한 아이템들이 많았는데 문건을 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더라. 이미 방영을 불허하겠다고 한 것도 있었다.”
피디수첩 '국정원과 언론장악' 에 나온 국정원 문건 일부.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복직하거나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국정원 국내 파트는 해체됐다. 그러니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누군가는 물을지 모른다.
성 피디 또한 이를 모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거 보수정권의 언론탄압을 보여주는 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도 주변에서 들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주니어던 내가 시니어가 됐는데 만약 이런 일이 다시 닥친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두렵더라.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닐까. 잘못된 것을 왜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통 한 아이템을 끝내면 ‘후련한 기분’이 들지만 이번 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도 못 다뤘고 저 부분도 못 다뤘고 자꾸 시험에 답을 다 못 써낸 학생 같이 찜찜한 기분이다. 워낙 광범위한 내용이라 내가 보여주는 만큼만 세상에 알려지게 되니….”
성 피디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도 자꾸 든다”고도 말했다. ‘최승호 아웃’이 ‘올해의 성과’로 적힌 문건, 피디수첩과 관련된 사이버대응이 ‘완료’로 표시된 원장님 지시 이행 문건 등이 공개되기 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담당 아이오, 김재철 전 엠비시 사장과 경영진들은 언론탄압과 관련해 모두 ‘무죄’를 받았다. 직권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대부분 이유였다. 배포 라인에 대통령실장, 홍보수석, 정무수석 등이 적혀있는 문건도 29건에 달했지만, 방송에 나왔듯 임태희, 이동관, 박형준 전 수석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건에 적혔다고 다 보는 건 아니다” 같은 말만 한다.
대선에 나온 모 후보는 언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시스템’으로 모든 걸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당시 “‘과거 5공식 탄압’이라는 공세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해진 법과 원칙 테두리 내에서 치밀하게 추진”이란 문구도 적어놨다. 피해자가 있고 문건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실행이 됐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언론탄압’의 역사가 있다. 이런 ‘무책임의 구조’가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잊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늦은 것은 없다.
김영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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