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 대회의실에서 10개 열린편집위원회가 열렸다. 10개 위원회는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평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창구 구실을 하게 된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겨레>의 10기 열린편집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가 생산하는 콘텐츠를 독자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시민의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시민편집인을 겸하는 열린편집위원장은 이승윤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1년 동안 맡는다. 불안정 노동과 소득 보장 정책 등을 연구해온 이 교수는 현재 국무총리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첫 민간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열린편집위원(이름 가나다순)으로는 현대제철 전무로 근무했던 기업 출신의 에너지 전문가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방송>(KBS) 시청자 평가원 등을 역임한 미디어 전문가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를 이끄는 김준일 뉴스톱 대표, 기후변화 정책과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는 위지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오랫동안 젠더 폭력에 맞서고 여성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온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운동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명재 자유언론실천재단 편집기획위원 등이 함께한다. 세대별로는 20대 2명, 40대 3명, 50대 2명, 60대 1명이며, 성별로는 여성 4명, 남성 4명으로 구성됐다.
10기 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는 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으며,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 정은주 콘텐츠총괄이 함께했다.
이승윤 =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우선 한겨레가 우리 시민사회에서 가진 무게와 역할이 있는데, 그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고 이 기회에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그 못지않게 큰 동기가 위원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학교에서 불안정 노동과 소득 보장 정책, 복지국가 등을 연구해왔고 지금은 국무총리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 밖에 있는 분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게 됐다. 이번에도 열린편집위원회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첫 회의인 만큼 그동안 한겨레에 대한 평가와 바라는 점 등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오동재 = 이번달 굉장히 많은 기사들이 1면과 사설에 실렸는데, 에너지나 기후위기 기사는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 한달 동안 그랬는데, 저는 앞으로도 기후위기 기사의 빈도에 대해 말을 많이 할 것 같다. 한겨레가 주요 언론 중 기후변화팀을 처음으로 만든 것은 한국 저널리즘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요즘엔 처음 만드는 것만큼 어젠다를 지켜나가려는 데스크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한겨레가 그럴 수 있도록 옆에서 쓴소리를 많이 하겠다. 기사에 환경운동가의 목소리가 많이 담기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대신 기후변화라는 이슈와 그것이 미치는 여러 영향이 여러 취재원을 통해 취재되고 성숙한 보도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한겨레 편집국에서 주요하게 다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김경식 = 한겨레가 정파성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기사를 보더라도 양쪽 입장을 소개하는 수준으로 보도가 됐고,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볼 국민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다룬 기사는 너무 늦게 나왔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지금 법안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을 보도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나올 기사들을 잘 분석해 의견을 전달하고 싶다. 다음으로 기업과 산업 쪽을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업을 재벌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다르다. 재벌의 탐욕은 억제하고 규제해야 하지만, 기업의 욕망은 지켜줘야 한다. 기업의 욕망이 이 사회를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업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김준일 = 한겨레가 최근 보도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내각 검증 보도 역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한다고 생각한다. 포괄적인 말을 하나 하자면, 다른 언론사와 달리 한겨레에는 굉장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있다. 요구도 많다. 시민주로 탄생한 신문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겨레가 지금 외부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너무 강박적이지 않나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 구성원들이 만족을 해야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 건데, 그게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소희 = 다른 신문의 경우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갈등 조장 형식으로 기사를 쓰고, 그래서 피브이(PV·웹페이지 열람 횟수) 등 데이터가 많이 나오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의 수치가 낮은 편인데 한겨레는 피브이를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지향과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그런 보도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명재 = 한겨레가 과중한 기대와 요구를 받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한겨레의 오래된 독자로서 그 점을 이해하려고 한다. 다만 한겨레는 시민들이 주인인 언론이다. 어떤 언론보다 더 주인이 명확하다. 족벌 언론이 주인이 있는 언론사라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허구적인 이야기다. 사주가 물적 자본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야말로 진짜 주인이 분명한 언론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이 때론 한겨레 구성원의 상대편으로, 외부의 비판자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당사자로 함께 지혜를 모으는 역할이 주어졌다고 본다. 보수언론이 의제를 선도하고 여론을 이끌어나갈 때 거기에 동조화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얼마나 한겨레답게 의제를 설정하고 때론 맞서고 의제를 재해석해왔는지 의문이 든다. 좁게 말하면 진보적으로, 넓게 말하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제를 재구성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해 실망한 적도 많았다. 이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다시 5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데, 진보언론을 넘어 상징적이고 양심적인 언론으로의 큰 기대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한겨레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겠다.
김영주 = 저는 한겨레의 새로운 실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다. 젠더데스크, 소통데스크는 한겨레가 언론사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 후원 모델도 론칭을 했고, 뉴스레터도 하고 있다. 저널리즘책무실의 경우도 저널리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좋은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실험들이 꼭 성공하면 좋겠다. 성공을 위해서는 독자와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이런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독자들에게 한번씩 알려주면 좋겠다. 더불어 아직 우리나라 언론들은 독자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한겨레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독자들에게 좀 더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끝으로 질문하는 한겨레가 되면 좋겠다. 요즘 기자들이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겨레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독자와 시민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해주면 좋겠다.
위지혜 = 우선 한겨레가 디지털에서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기사가 아무래도 디지털에서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한겨레가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응원하는 입장이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디지털 문법으로 기사가 작성되어야 디지털에서는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에서 기존 종이 신문 문법으로 글을 유통하면 20대나 특히 10대는 낯설어서 읽지 못한다.
최근에 교육 실습을 나갔는데, 10대 학생들이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여성가족부 해체 이런 이슈를 수업시간에 다루니까 아이들 눈빛이 굉장히 똘망똘망하게 바뀌더라. 신문은 안 읽는다고 해서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냐고 했더니, 에스엔에스(SNS)에 뜰 때 잠깐잠깐 본다고 답했다. 10대들은 글에 익숙지 않거나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러면 영상에 신경을 쓰거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층도 읽고 싶은 기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개별 기사를 두고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교육정책이 실종됐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맞는 지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교육 문제를 다룰 때 대입제도에 치우친 경향이 있고 한겨레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이 수업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교실 자체가 민주적 환경인가, 아이들에게 인권 친화적인 환경인가 등의 이슈가 중요하다. 이런 이슈를 더 다뤄주면 좋겠다.
20대 여성과 관련한 기사도 한마디 하고 싶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이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기사가 많았는데, 사실 20대는 정치적 열망을 분출하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제도정치가 잘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방식이라기보다 왜 그동안 제도권은 20대 여성의 열망을 반영하지 못했냐를 분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달에는 장애인 관련 기사가 많았다. 관련한 인터뷰나 영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이럴 때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진짜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다뤄주면 좋겠다.
이승윤 = 독자가 소비자로서 원하는 스토리와 한겨레가 의제를 설정하는 기사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적이거나 평범한 이야기에서 더 큰 힘이 나올 수 있다. 차별금지법 문제 역시 국회의원이 삭발을 하는 것보다 지금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미류 활동가 이야기가 훨씬 더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와 공감이 됐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함께 가고 있다는 신호를 한겨레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