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5일 ‘국민참여 토론’ 결과를 근거로 티브이(TV)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을 공식화했다. 티브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별도로 징수하는 방안 등을 놓고 대통령실이 직접 온라인 찬반 조사를 실시해보니 찬성 의견이 더 높았다는 것이 분리 징수 추진의 근거다. 다만 징수 방식 변경은 당장 수신료 징수율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재원을 볼모로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권고했다며 그 근거로 국민참여 토론 결과를 들었다. 앞서 대통령실은 3월9일부터 한달간 국민제안 누리집의 국민참여 토론 코너에 ‘티브이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에 관한 찬반 의견 등을 물었다. 이와 관련해 강 수석은 “총투표수 5만8251표 중 약 97%에 해당하는 5만6226표가 (징수 방식 개선) 찬성표로 집계됐다”고 소개했다. 강 수석은 이를 바탕으로 방통위 등에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법령 개정 및 그에 따른 후속조처 이행 방안 마련, 공영방송 위상 제고, 공적 책임 이행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의 경우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45%(지난해 기준 6934억원)에 이를 만큼 크다는 점이다. 한국방송은 내부적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가 현실화하면 수신료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고, 징수 관련 비용(지난해 660억원)은 두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경우 상업광고 의존도를 높이거나 장애인 방송 등 공익성이 높은 프로그램의 제작·편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워야 하는 만큼, 대통령실이 강조한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 이행’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 징수는 방송의 공공성이 아니라 상업성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민참여 토론 시스템이 동일인의 중복 응답(어뷰징)을 허용하고 있는데다 여당과 일부 보수 유튜버의 조직적인 참여 독려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의 핵심 근거로 국민참여 토론의 ‘찬반 투표’ 결과를 내세운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앞서 우리는 해당 국민제안이 1인 1표가 아닌, 한 사람이 여러 계정으로 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오류를 밝혀낸 바 있다”며 “반면 (대통령실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수신료 통합 징수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인정한 법적 판단은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수신료에 대한 법적 근거는 무시하고 신뢰성조차 의심받는 국민제안만을 근거로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해 케이비에스 구성원들은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방송 사쪽도 입장문을 내어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그동안 케이비에스는 대통령실 국민제안과 관련해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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