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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대응 팔 걷은 유럽…“표현의 자유 침해 심각” 우려도

등록 2023-06-06 15:50수정 2023-06-06 16:0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여당이 연일 가짜뉴스 대응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 등이 도입한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 규제 목적의 법·제도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가짜뉴스 규제 정책을 검토할 때, 규제의 실익과 개인의 기본권 축소 우려 등을 두루 살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레거시(전통) 저널리즘의 신뢰도 하락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이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한 가짜뉴스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함께 가져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지난 31일 발간한 미디어정책리포트 ‘유럽의 가짜뉴스 대응 정책’을 보면 유럽은 2015년부터 중동 난민 문제로 인한 극단적 인종혐오와 국수주의의 확산,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후 유럽의 통합을 위협하는 에스엔에스 콘텐츠의 확산 등을 경험하며 가짜뉴스, 또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먼저 프랑스는 2018년 정보조작대처법을 마련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마크롱 후보 캠프의 재정 3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알카에다가 지지하기로 한 대선주자는 마크롱이다’, ‘러시아 정부는 마린 르펜의 당선을 돕는다’ 등 대선 후보에 대한 다양한 허위정보가 유포된 것이 계기였다. 보고서는 “정보조작대처법의 주된 목적은 허위정보를 이용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시도들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 법에 따르면) 선거 전 3개월 동안 법원은 온라인 플랫폼에 허위정보를 게시하지 못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한 해 앞서 ‘네트워크 집행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마련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이 위법적인 콘텐츠나 댓글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과 신고가 들어오면 위법성을 판단한 뒤 24시간 안에 삭제할 것 등을 강제하는 내용이다. 허위정보만이 아니라 혐오 발언과 모욕, 아동 성착취물, 나치 부정 범죄 등 독일 형법상 범죄가 되는 모든 종류의 게시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 밖에도 스페인은 언론 매체와 소셜 네트워크의 허위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초법적 상설 기구 설립을 위한 장관령을 개정했고, 루마니아는 같은 해 대통령령으로 통신 규제 당국이 코로나19 관련 허위정보를 담은 온라인 콘텐츠의 삭제 및 접속 차단을 명령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헝가리는 팬데믹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방해하는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퍼뜨리는 행위에 대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가짜뉴스 대응법’을 2020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유럽연합(EU)도 2020년부터 구글과 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허위정보와 아동 학대, 차별적 콘텐츠 등 유해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검열하도록 하는 내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제정해 내년부터 시행한다. 이를 위반하면 매출액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받고, 규정 위반이 반복되면 유럽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가짜뉴스 대응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식에서 “가짜뉴스가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위협한다” 발언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곧바로 기존의 ‘가짜뉴스 퇴치 티에프(TF)’ 전면 강화 방침 등을 밝혔다.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경찰은 지난달 ‘허위사실 유포 단속 티에프’를 꾸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일명 지라시와 허위사실 유포를 특별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가짜뉴스 문제 해결을 위해 공권력에 의한 단속과 엄벌이라는 수단을 앞세우는 데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정부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단속하게 되면 그 대상은 주로 정부 비판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도 불가피하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정보조작대처법 도입에 앞서 수많은 언론사와 언론단체, 언론학자와 야당 정치인은 이 법에서 말하는 허위정보의 정의가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검열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어떤 장치도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정보의 진실성 입증은 저널리즘 영역이지 법관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근본적 주장도 나왔다.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도 입법 과정에서 ‘사기업인 에스엔에스 사업자에게 과도한 규제권한 부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저해’, ‘다른 법을 통한 중복처벌 가능성’ 등 우려가 제기됐다. 헝가리에서는 평범한 시민이 팬데믹으로 인한 통행금지 완화에 대해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구금된 실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보고서는 “모든 국가에서 개별법 제정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따라서 관련 규제정책에 대한 검토에 있어서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제의 실익과 근본적 가치의 위협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검토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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