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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을’ 가는 길은 버스타고 가는 현실의 길

등록 2008-05-15 17:45수정 2008-05-15 18:44

김지하 시인
김지하 시인
[한겨레 창간 20돌] 김지하 시인
시인 김지하씨가 <한겨레>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하늘마을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과 손수 그린 매화 그림을 보내 왔다.

일산서 본 하늘마을행 버스
한민족 시원 파미르고원 연상

“대운하 철저 반대의 길이
곧 생명과 평화의 길…
자본주의 막바지 주목받는
‘공생’ 이미 19세기 한국사상에”

나 사는 곳 일산 동구청 앞 버스정류장에 어느날 아침 광화문 가는 차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문득 종점 이름을 ‘하늘마을’이라고 써 붙인 웬 이상한 버스 하나를 보았다. 재작년 카자흐, 키르기스 그리고 우즈베크의 타슈켄트와 사미르칸트를 기행하고 난 뒤다. 그 기행의 목적들 가운데서 내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쪽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진 옛 신시(神市)의 희미한 자취나마 내 스스로 감촉해 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만사천년 전 한민족의 시원인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麻姑城) 신화에 가까이 가는 일이기도 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파미르는 구름과 안개뿐 철저히 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거대한 강물이 언제나 그 첫 샘물의 자취를 지우듯이.

카자흐에서도, 키르기스에서도 전문 민족지학자들의 입으로부터는 언제나 ‘마고는 없다’뿐이었다. 또한 파미르의 일만사천년 전 ‘여신숭배의 모계 신화도 역시 없다’였다.

신시는 마고성의 높은 솟대(巢)로부터 관측된 거대한 성운군(星雲群) ‘천시’(天市)의 모방이며 그때 감촉된 우주음악 여율(呂律)의 현실적 원천이라고 한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중국의 황제(黃帝) 이래 오랜 동아시아 우주질서의 금척(金尺)이었던 율려를 여지없이 거꾸로 뒤집은 팔려사율(八呂四律)이 곧 마고성의 그 큰 평화의 살아 있는 원형이라는 생명·평화의 신화 그 자체다.

바로 그 여율이 지난 19세기 한반도 우주개벽의 신비 과학인 정역(正易)에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중앙아시아의 그 큰 대지 위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긴긴 시간을 관통했을 숱한 선천(先天) 시대의 도그마들을 생각했을 때 그 미소들은 도리어 홍소로 변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키르기스의 대학자 무사예프 사마르 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마디!

첫째,

“마고는 없다. 그러나 ‘마고 코코크’는 있다. ‘코코크’는 ‘전락한’ ‘타락한’의 뜻이다. 오른쪽 다리는 남성, 왼쪽 다리는 여성인 단성생식의 여신으로서 남성 도그마들에 의해 격하된 어두운 신이다.” 옳거니!

둘째,

“호혜와 교환이 거룩한 산상 호수의 시장 안에서 엇섞이는 ‘스이’란 이름의 재래시장이 바로 지금까지도 열리고 있다. 이시쿨, 송쿨, 샤토르쿨 등 산상 호숫가에서 정례적으로 열린다.” 옳거니!

매화 그림
매화 그림
셋째,

“‘마나스’ 서사시에 의하면 한민족은 키르기스 민족의 조상이다. 한민족은 ‘파미르 키르기스 한’이란 긴 이름을 가진 파미르 문명의 창시자로서 그들의 일만여년 전 유골이 이시쿨 호숫가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 호숫가엔 촐폰아타(졸본성)란 이름의 마을이 있으며 또한 ‘야르마르크트’라는 국제적 신시가 지금도 열리고 있다.” 옳거니!

나는 야르마르크트와 함께 이 세 가지를 현실적으로 거의 감촉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마르칸트의 옛 이름이 또한 ‘촐폰아타’, 즉 졸본성이며 ‘비비하눔’이라는 성스러운 사원 바로 앞마당에 바자르가 열리고 있는 수천년 신시의 전통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시는 베트남의 성스러운 도시 후에의 동바시장에도 그대로 살아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쇠퇴와 함께 자본주의의 현실 또한 막바지에 도달한 듯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칼 폴라니의 호혜시장과 함께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틀래치론도 여기저기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과 여러 형태의 소셜 벤처가 귀신처럼 출몰하며 여기저기서 시퍼렇게 번뜩인다. 바스크의 몬드라곤 공동체와 이스라엘의 키부츠가 여지없이 쇠퇴하면서 여러 공동체와 협동운동이 자기혁신을 통해 이제 도리어 확연하게 ‘계’(契)와 ‘품앗이’ 등 ‘개체-융합’이나 ‘내부공생’의 ‘자기조직화’의 길로 성큼 나아간다. 어떤 철학자는 시장에서 도리어 성스러움의 본바탕을 발견하고,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현대성을 오히려 대문자로 시작되는 ‘코머스’(Commerce)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미 19세기 한국의 개벽사상사, 남조선 사상사 안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난 바 있다. 수운 동학의 ‘모심’(待)의 실천 안에서, 해월의 개벽이 ‘길바닥과 장바닥에 비단이 깔리고 만국과 교역을 시작할 때’에서, 김일부의 여율이 민중적 삶의 원리인 ‘십일일언’(十一一言) 안에서, 증산의 천지공사가 통일신단의 조화정부론 안에서, 그리고 소태산의 핏자국의 신비가 저축조합과 여러 경제적 실천 안에서 이미 커다랗게 꽃피고 있었다.

과거에 무엇을 어떻게 해 왔건 간에, 좌향좌 우향우를 무엇을 토대로 실천해 왔건 간에, 최근의 정치현실에서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역동적 중도’의 근거에 바로 이와 같은 ‘교환과 호혜’의 성스러운 시장, 우리의 저 아리따운 신시의 전통이 그야말로 아시아 문예부흥과 전세계 문화대혁신을 통하여 생명과 평화의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으로 기운차게 계승되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늘마을’은 그야말로 ‘신시’다. ‘하늘마을’은 구름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 버스를 타고 간다. 현실이다.

오늘 아침에도 일산 동구청 정류장에서 ‘하늘마을’ 가는 이상한 버스를 또 보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는 한 가지를 더 발견한다.

‘하늘마을 가는 길’은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것. 생명과 평화는 결코 진부한 슬로건이 아니라는 것. ‘거룩한 시장의 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의 인사가 ‘오몽 블림’(생명 평화)이듯이 그것은 도리어 가장 현대적이고 생활적이며 현실적인 민중운동으로부터만 가능한 길이라는 것이다.

바로 대운하 철저 반대의 길이 곧 생명과 평화의 길, 하늘마을 가는 길이다.

이 길을 가야 한다.

눈보라 속에서 맨 처음에 피는 한매(寒梅)만이 우리의 멘토이며, 춥고 외롭지만 머지않아 풍성한 꽃을 만발하게 할 예언자 꽃, 다름아닌 ‘화형’(花兄)이기 때문이다.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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