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합작 ‘회심의 악수’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해임안 의결을 주도한 유재천 전 한국방송 이사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시중, 친여 이사회 지원…유재천, 정연주 해임 주도
탈·편법 연속 불구하고 “상관없는 일” 발뺌도 닮은 꼴
탈·편법 연속 불구하고 “상관없는 일” 발뺌도 닮은 꼴
현 정권 출범 이후 ‘한국방송 장악’을 위해 벌였던 일련의 ‘기획’들이 모두 철퇴를 맞았다. 정연주 <한국방송>(KBS) 전 사장의 해임처분은 취소 판결을, 배임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신태섭 한국방송 전 이사의 이사직 해임도 취소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를 주도했던 정권의 사과나 해명은 전혀 없다.
‘한국방송 접수’ 과정은 권력기관들이 총동원됐지만, 주연은 단연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방송 이사회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연이은 압박에도 정 사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정권은 ‘한국방송 이사진 교체’와 ‘정 전 사장의 비리 캐내기’라는 작전을 구사했다. 지난해 5월12일 김금수 한국방송 이사장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회동한 뒤 중도퇴진을 발표하자 방통위는 김 이사장 후임으로 보수시민단체인 공영방송발전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유재천씨를 앉혔다. 그리고 신태섭 전 동의대 교수를 한국방송 이사직에서 해임했다.
신 전 교수 해임 과정은 사실상 ‘탈법’의 연속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동의대가 “학교 허락 없이 한국방송 이사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하자(2008년 7월1일), 방통위는 같은 달 18일 곧바로 그를 해임하고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보궐이사로 추천했다.
당시 방통위는 한국방송 이사 자격은 공무원법에 준해 적용한다는 방송법 조항을 끌어와 신 이사를 해임했다. 공무원법 33조에는 “공무원으로 해임된 지 3년이 되지 않은 자는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신 전 이사는 “한국방송 이사직에서 사임하지 않는다고 교수직에서 해임하고, 교수 해임이 됐다고 한국방송 이사직을 해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실제 지난 6월26일 서울행정법원도 “(한국방송 이사) 해임은 그 사유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더라도 재량권을 남용하거나 그 한계를 일탈한 위법이 있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부산지법도 “신 교수의 이사직 수행에 대해 학교가 사회봉사 점수까지 부여했고, 이사회 참석으로 인해 수업에 차질을 빚었지만 보충강의를 성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동의대의) 해임 처분은 가혹하다”고 밝혔다.
방통위가 한국방송 접수를 위한 사전준비를 마무리하자, 한국방송 이사회가 ‘뒤처리’를 책임졌다. 친여 성향 이사가 6명으로 과반이 되자 자신감을 얻은 한국방송 이사회는 감사원의 해임 권고 결정이 나기 무섭게 정 사장 해임제청 의결을 추진했다. 한국방송 구성원들과 시민언론단체들이 반발하자, 여당 이사들은 외부 호텔 등에서 기습 이사회를 진행했다. 8월18일 정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6 대 0 표결로 통과시킨 이사회에는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해 이춘호·방석호·강성철·권혁부·박만 이사가 참석했다.
당시 이사회는 감사원이 지적했던 △큰 폭의 적자 등 경영 잘못을 했고 △법인세 환급소송 관련 법원 조정권고안 수용으로 인해 회사에 해를 끼쳤다는 내용을 해임 사유로 제시했다. 이 밖에 회사관리를 제대로 못해 광우병 촛불집회 시민들에게 한국방송 내 화장실을 쓰도록 허용했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들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 역시 법원 판결로 무리수였음이 드러났다. 지난 8월18일 서울중앙지법은 △조정권고안 수용이 한국방송에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 없고 △정 전 사장이 연임할 목적으로 조정권고안을 수용한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정 전 사장도 “조정안은 한국방송 감사실이 독자적인 판단과 법률 자문을 거쳐 동의했고, 최고 결정기구인 경영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 12일 판결에서 경영상 잘못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법인세 환급소송 처리나 인사권 행사 등은 정 전 사장의 해임사유가 안 된다고 판결했다. 행정법원은 “한국방송 사장의 임기제도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한 것”이라며 “정부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명시했다. 남윤인순 당시 한국방송 이사는 “오로지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겠다는 일념으로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들이대며 밀어부쳤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방송 장악 과정은 편법과 탈법의 연속이었지만, 해당 기관들은 여전히 잘못이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방통위는 강성철 이사를 추천한 일밖에 없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의 해임제청을 주도했던 유재천 전 한국방송 이사장도 1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이사회는) 정확한 절차로 진행됐다. 정 사장 해임은 임명권자의 결정 사항으로 이사회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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