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i)의 ‘줌’ 섹션에 실린 금융위기에 관한 심층 기사. 잡지처럼 그래픽을 많이 쓴 게 눈에 띈다. 마르팅 피게이레두 편집인은 “줌 섹션이 우리 신문의 핵심이다. 여기에 최고의 기자와 에디터, 디자이너들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세계신문협회 총회 ‘선택과 집중’ 화두로
포르투갈 신생지 ‘i’, 섹션 줄이고 뜨거운 이슈 심층보도
반년새 독자 50% 급증…“뉴스량 감축은 모험” 지적도
포르투갈 신생지 ‘i’, 섹션 줄이고 뜨거운 이슈 심층보도
반년새 독자 50% 급증…“뉴스량 감축은 모험” 지적도
신문의 미래는 암울한가. 이런 의문이 지난 1~3일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62회 세계신문협회 총회장을 짓눌렀다.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유력 신문사들이 경비 절감을 이유로 대거 불참한 건 상징적이었다. 전세계 신문업계의 기술적 진전을 엿볼 수 있는 ‘2009 신문엑스포’는 참가 업체가 적어 썰렁했다. 신문 기사를 온라인 아카이브(도서관)로 전환하는 기술을 전시한 ‘나인스타스’ 관계자는 ‘이런 기술을 채택해 수익을 낸 신문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몇년 전부터 침체된 신문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각광받았던 ‘온라인 신문’에 대한 기대는 현저히 줄었다. 티머시 볼딩 세계신문협회 사무총장은 기조연설에서 “온라인은 노다지가 아니다. 디지털 분야의 수익이 인쇄 매체(신문)의 손실을 메워줄 것이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매체의 다변화는 필수적이지만, 종이신문 자체의 혁신 없이는 모든 시도가 모래성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듯했다.
한줄기 빛은 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왔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종이신문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답이 될지 모를 포르투갈의 신문이 전세계에서 모인 언론인을 흥분시켰다. 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인 마르팅 피게이레두는 20여 총회 행사 중 무려 3개의 세미나에 초청받아 열광적 박수를 받았다.
■ 잡지 같은 신문 지난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전혀 새로운 신문 하나가 탄생했다. 이름은 <이>(i). ‘이’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피게이레두 편집인은 “누구는 ‘정보’(information)라고도 하고, 누구는 ‘세계’(international)라고도 한다. 나는 이것을 ‘혁신’(innovation)이라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의 창간 부수는 1만1000여부. 6개월 만에 50% 가까운 신장세를 기록하며 지금은 1만6000여부로 늘었다. 지역신문 중심인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일간지 <푸블리쿠>가 3만6000부라는 걸 고려하면, <이>의 부수 증가는 파격적이다.
<이>는 기존 신문과 달랐다. 우선, 전통적 형식의 섹션 구분이 없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신문은 1면부터 정치, 국제,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의 섹션으로 구분해 기사를 실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의 신문도 예외가 없었다. <이>는 이런 구분을 파괴했다. 4개의 주제로 모든 뉴스를 재통합했다. ‘오피니언’(Opinion)과 그날의 주요 뉴스를 간략히 정리해주는 ‘레이더’(Radar), 이슈 가운데 몇개만 골라 심층 보도하는 ‘줌’(Zoom), 레저·문화·스포츠를 함께 다루는 ‘모어’(More), 이렇게 4개의 섹션으로 지면이 이뤄진다. 사설·칼럼을 신문의 맨 뒤쪽에 배치하는 기존 신문과 달리, <이>는 신문의 첫 페이지를 오피니언면으로 시작한다. 피게이레두 편집인은 “독자들은 이제 ‘뉴스’를 인터넷 등 다른 매체를 통해 먼저 접한다. 우리는 독자가 더 알고 싶어 하는 것만 골라서 심층 보도한다. 우리 신문의 기사 수는 다른 신문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타블로이드 판형에 매일 56면 정도를 발행하는 <이>를, 피게이레두는 ‘데일리 뉴스페이퍼’(일간신문)가 아닌 ‘데일리 뉴스매거진’이라고 불렀다. ‘잡지 같은 신문’이란 뜻이다.
■ 쏟아진 찬사,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홍보용 <이> 시험판이었다. 하이데라바드 컨벤션센터 곳곳에 쌓아놓은 <이> 시험판은 금세 동이 났다. 세계신문협회 사무국은 안내책자에 이 신문을 소개하면서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종이신문의 진정한 시초”라고 표현했다. 국제미디어컨설팅그룹의 후안 세뇨르 부회장은 “독자는 신문의 작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근본적 혁신을 원한다. 미국식의 전통적 섹션의 시대는 지났다. 기사 개수가 많은 신문보다, 개수는 적더라도 자세한 내용을 담은 신문을 원한다. <이>는 그런 사례”라고 칭찬했다.
총회에 참석한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 김영욱 박사는 “새롭고 유용한 시도로서, 심층기사 위주의 지면 전략은 눈여겨봐야 한다. 그러나 작은 신문은 모르겠지만 규모가 큰 신문에서, 다루는 뉴스 수를 대폭 줄이는 걸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불확실하다. 전반적인 뉴스 소비 행태가 변하는 상황에서 잡지 형태의 신문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탄생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작은 신문이 ‘종이신문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전세계 모든 언론이 이 신문에 주목한다는 건, 지금 종이신문이 처한 위기의 깊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볼딩 사무총장의 말처럼,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는 데엔 누구나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라바드(인도)/박찬수 기자 pcs@hani.co.kr
하이데라바드(인도)/박찬수 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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