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항의에 등돌린 방문진 이근행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오른쪽 사진, 서서 말하는 이)이 8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정부의 방송 장악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동안,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왼쪽 사진 가운데)과 여당 쪽 이사들이 모두 뒤로 돌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이 침통한 표정으로 이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KBS이어 MBC까지
‘정부 홍보방송’ 재편
여론 다양성 흔들어
‘정부 홍보방송’ 재편
여론 다양성 흔들어
8일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의 사퇴로 완성 단계에 접어든 정부의 방송 장악이 한국 언론 및 민주주의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부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권의 문화방송 장악은 지상파 방송 3사의 목소리를 단일화시키는, ‘한국 언론 기능의 심각한 퇴행’을 뜻한다는 지적이 많다.
퇴행의 첫째 양상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득세한 ‘정부 홍보 방송’으로의 자기변신이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엠비시가 무너진 이후 방송사들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밝힌 ‘정부 국정철학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방송’이 되도록 강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7월 박 수석은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방송>(KBS)을 “정부 산하기관”으로 지칭하며,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정부의 왜곡된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같은 해 8월 정연주 전 사장의 강제퇴진 이후 한국방송에서 현실화하고 있는 ‘정부의 방송관’은 지난해 김인규 사장 취임 뒤 더욱 노골화했다. 최근 한국방송은 드라마와 오락·음악 프로그램에서까지 정부 입장을 옹호하며 안팎의 반발을 샀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장 후보에 단독출마한 엄경철 기자는 “엠비시 경영진 교체가 완료되면 케이비에스처럼 순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엠비시마저 케이비에스 전철을 따를 경우 여론다양성은 뿌리째 흔들리고 한국 저널리즘은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비판 목소리가 거세된 ‘침묵의 카르텔’은 중요 현안의 사회적 의제 및 여론 형성 차단과도 직결된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박원순 변호사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는 케이비에스가 침묵할 때 엠비시에서 간략하게라도 보도했기에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며 “방송사들이 입을 닫으면 4대강, 삼성 엑스파일 같은 의제들과 인권 이슈들은 여론화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결국엔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말하지 않는 언론’이 ‘민주주의 붕괴’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보도의 보수화’보다 ‘공영방송 제도 자체의 붕괴’가 더 위험한 퇴행이란 견해도 제기된다.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경영진 교체 후 민영화 추진’ 의혹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상식을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 보도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공영방송이 한번 민영화·사영화되면 다신 회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태섭 교수도 “현 정부의 방송 장악이 권위주의 정권과 다른 것은 방송을 상업·민영방송으로 재편하려 한다는 점”이라며 “종합편성채널이 들어오고 공영방송이 축소되면 민주적 공론장으로서의 방송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9일 황희만 신임 보도본부장 및 윤혁 제작본부장은 문화방송 노조의 출근저지투쟁으로 이틀째 본사 사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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