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김정환씨
[한겨레가 만난 사람]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 김정환씨
“항상 약자 곁에 섰더니, 보수쪽도 ‘좌빨’이라 못부르겠다더군요”
“항상 약자 곁에 섰더니, 보수쪽도 ‘좌빨’이라 못부르겠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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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가면 입보다는 귀를 먼저 열어요.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응해주면 더 좋아하더라고요.” 1인미디어인 ‘미디어몽구’ 김정환씨의 취재 비결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자들 철수 뒤에도 현장 지켜
나도 힘들기에 약자 입장 알아
객관성보다는 아픔 대변하려 해 -이름이 알려지면서 취재 과정에서 돈의 유혹이 꽤 많았다던데요. “2009년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활동에 대해 호평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농식품부에서 2000만원짜리 영상 프로젝트를 제안해 왔는데 거절했습니다. 알고지내는 언론인들이 그것은 괜찮다고 했지만, 제가 뿌리쳤어요. 사실 농식품부 제의는 특별히 정부시책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수박을 맛있게 먹는 법 찍어서 올리면 됐거든요. 그런데 돈맛 들면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 것 같았어요. 촛불집회 이후 많은 1인미디어들이 돈 때문에 관두는 경우 많이 봤거든요. 미디어몽구 블로그에 배너광고를 달아주면 어느 정도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는데 거절하고 그 자리에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 올리기도 했어요. 네티즌들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얼마 전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의 빈소를 지켰더군요. “할머니의 부산 빈소를 찾아가 이틀간 자리를 지키며 마지막 길을 같이했습니다. 제가 취재라는 걸 해보자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텔레비전에서 자주 나왔던 수요집회였어요. 2005년 겨울 황금주 할머니께서 ‘한국 정부는 우리가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 말씀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트위터에 황금주 할머니 빈소가 쓸쓸하다고 올렸더니 전국에서 트위터 친구들이 20명 정도 부산 빈소까지 찾아왔어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봉사활동도 한다면서요? “1000회 수요집회 계기로 트위터 친구들이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갖자고 해서 할머니들의 쉼터(평화의 우리집)를 매주 일요일에 찾아가서 청소도 하고 말벗도 되어줍니다. 한 1년이 넘었어요. 2조로 나눠 격주로 참석합니다. 제 책 수익금도 모두 할머니들에게 기부할 계획입니다.” -돈도 없고 기자라는 울타리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취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저는 기자 신분이 아니지만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때 항상 네티즌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현장 소식을 전하고 짧게 제 생각을 반영했어요. 그리고 항상 약자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는 현장을 가면 그분들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대변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객관적인 입장이 없었던 듯해요.” 황우석 취재로 미디어계 첫발
7년간 기사 조회수 4500만건
트위터 팔로어도 12만명 넘어
배우 김여진 “존경하는 언론인” -영상 게시물 조회수가 엄청나던데요. “이제 그런 것 신경 안 써요. 처음에는 많이 의식했는데, 이제 한 명이 보더라도 꼭 알려야 할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봐야 할 것에 더 신경 씁니다. 약자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손을 내밀어주는 게 힘들지만 더 하고 싶습니다.” -몽구님의 트위터 내용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글이 많더군요. “제가 아무래도 7년 동안 배고픈 삶과 활동을 많이 해서 그분들이 어떤 처지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아요. 저도 힘들지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진짜 힘든 사람은 힘들다고 하지 못하잖아요. 저분들의 아픔을 아니까 제 영향력을 이용해 알려주자고 하는 거죠.”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12만명이다. 배우 김여진씨가 해고된 ‘홍대 청소부 아줌마들’의 농성 현장에 동참하게 된 것도 그가 취재 간다는 트위터 글을 보고 난 뒤였다. -배우 김여진씨와의 관계가 특별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친누나라고 알 정도예요. 홍대 청소노동자 사건을 계기로 친해지게 됐는데 제 생일 때 선물도 사주고 진짜 멋진 분이에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에요. 김여진씨를 만나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내가 몽구보다 영향력 있으면 청소노동자의 처지를 알려주었을 텐데’라는 글이었어요.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돌린 것도 김여진씨 덕이라고 생각해요.” 촛불시민 물대포 맞는 것 보며
나 자신 업그레이드하게 돼
물정 모르던 사람이 세상 알아가는
그런 보도에 신선함 느끼는 것 같아 -촛불집회 취재가 자신을 업그레이드한 계기가 됐다고요? “그전에는 현장소식 위주로 전하고 그랬죠. 집회도 피해 다닐 정도였어요. 이념적인 것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그분들이 물러서지 않고 국민으로서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죠. 당시 강남에서 자취하고 있었는데, 밤을 새우고 집에 돌아오곤 할 때 강 하나 건너면 다른 세상이 있고 해서 그때 많이 느꼈죠. 100여일 동안 며칠을 제외하곤 매일 광화문으로 출근해서 시위대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행동했어요. 매일 6㎜ 테이프 2개씩 촬영했어요. 언젠가는 다큐로 만들 생각인데 시간이 없어서 아직 못하고 있어요.” -보수진영 쪽의 반응은 어땠나요? “보수 쪽에서 저한테 특별히 좌빨이니 빨갱이라고는 못했던 것 같아요. 보수진영의 한 사람은 몽구님한테는 좌빨이라고 하지 못하겠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요. 항상 사회적 약자 곁에서 현장에 같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이념적으로 (사안을) 본다거나 그렇지는 않거든요.” 미디어몽구가 ‘나의 멘토’라고 부르는 한국방송 최필곤 피디는 “몽구가 기록한 걸 많은 사람들이 좌파적 영상이라고 평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매우 우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며 탑골공원에서 할아버지들이 시위를 벌인 뒤 태극기를 마구 버린 것을 고발한 미디어몽구 기사를 거론했다. 알바·계약직에 ‘바닥’ 생활도 경험
이름 알려지며 돈 유혹 있었지만
배너광고 대신 실종아동캠페인도
지금은 ‘뉴스타파’ 합류해 새 도약 -기사를 쓰면서 본인의 글이 기사로서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언젠가요? “아휴~ 제 글이 항상 부족하죠. 텍스트는 진짜 약해요. 글을 못 쓰니까요. 제가 손발이 고생하는 게 글을 못 써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책도 거의 읽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을 묻자 “만화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한다고 한다. 책장을 채우기 위해서란다. 도대체 꾸밈이라는 말을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올해 들어 라디오 고정출연 제의가 세차례나 왔는데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제가 말을 못해서 다 거절했어요. 여러 사람 있으면 떨려요. 생방송 들어가면 떨려요.” 그와 인터뷰를 한 이건범씨는 “그의 글은 거칠게 느껴질 때도 있고, 영상은 극적인 편집 기법과도 거리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주류 저널리즘이 놓치고 있는 어떤 강점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의도공원 화장실을 찍은 미디어몽구의 사진을 예로 들었다. “오른쪽은 여자 화장실이고, 왼쪽은 남자 화장실인데, 여자 장애인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 쪽으로 화살표가 되어 있다. 미디어몽구는 그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 앞쪽에 있으면 가기 불편하잖아요.’” -미디어몽구 기사는 기존 언론과 다르고, 독특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알아 가는 과정을 쓰니까 그렇게 느끼나 봐요. 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제가 궁금한 것을 취재하니까요. 제 독자들이 기사를 보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을 느끼나 봐요. 오마이뉴스에도 시민기자제도가 있지만 기존 기사와 별로 다름없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동영상은 폭발적 반응이었습니다. “퇴임하고 서울역에서 봉하마을로 가기 위해 케이티엑스를 타기 직전 마지막으로 악수한 사람이 저였어요. ‘그동안 수고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노 대통령이 말한 ‘사람사는 세상’을 좋아해요. 노통 노제 때 김제동이 발언한 내용을 수록한 동영상은 추천수가 5만이 넘었고, 조회수가 70만이 넘었어요. 다음 관계자가 추천수가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뉴스타파와 하면서 어떤 것을 배운 것 같아요? “고정수입이 들어온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아요(웃음). 평소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이한다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배울 점입니다. 처음에 제가 편집한 영상에는 메시지도 없다고 퇴짜를 맞아 자존심도 상했는데 데스크가 다시 편집한 것을 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뉴스타파와 같이 일한다고 해서 제 색깔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데 사실 잃는 게 아니라 하나를 더 얻는 거죠.”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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