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간혹 짧지만 눈길을 잡아끄는 신문기사가 있다. 작은 기사 뒤편에 곡진한 사연이 숨어 있음을 알고 있을 때다. <동아일보> 16일치 12면의 작은 기사가 바로 그런 경우 아닐까. 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전하는 기사로, 동아일보가 국가 상대 소송을 내서 이겼다는 내용이다.
자랑스런 내용일 터인데, 왜 이렇게 작게 들어갔지? 200자 원고지 4장 분량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8년 “동아일보 대량해직 사태는 국가 공권력이 작용한 것으로 해직자들에게 사과 등의 조처를 하라”고 권고한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는데, 이번에 이긴 것이다.
동아일보한테 40년 전 대량해직 사태는 어떤 의미일까. 이날 동아일보 기사에도 “이 사태는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이 유신정권의 언론통제에 항거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고 기록했다. ‘항거’라는 표현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웠다가 정간을 당한 일에 대한 자부심 비슷하다. 같은 ‘신문쟁이’로서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 자부심이 곧바로 길을 잃는다. 동아일보는 이듬해인 1975년 신문사에서 농성하던 기자 등 160여명을 ‘구사대’를 동원해 몰아냈다. 그리고 110여명은 영영 신문사로 돌아오지 못했다. 누구도 부인 못하는 이 사실을 두고, 동아일보는 이날치 신문에서 “동아일보사는 재정위기 때문에 100여명의 기자를 해임 또는 무기 정직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회사가 돈이 없어 잘랐을 뿐이고, 당시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대로 하면 동아일보사는 지금도 언제든지 기자들 100명쯤은 잘라낼 수 있다. 종편 때문에 동아일보사의 경제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건 업계 상식이다. <채널에이>는 지난해에만 300억원 가까이 적자(당기순손실)를 냈다.
동아일보는 1999년 10월25일 ‘자유언론실천선언 25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4개면에 걸쳐 실었다. “독재암흑 뚫고 나온 자유언론의 빛”, “70년대 본격적인 민주화운동 기폭제 역할” 등의 제목을 달았다(7면). 신문은 당시 사설에서 “당시 부득이하게 회사를 떠났던 기자들과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15년이 흘러 이번 소송으로 이어졌다. 동아투위 김종철 위원장은 “소송을 건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매일 동아일보를 보면서 세상을 읽으셨다. 우리 아버지가 사랑한 동아일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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