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방송장악 실태
KBS 양대 노조·직군 대표자들
“박대통령 사과” 외침에도 모르쇠
방통위는 ‘종편 방발기금’ 또 면제
KBS 양대 노조·직군 대표자들
“박대통령 사과” 외침에도 모르쇠
방통위는 ‘종편 방발기금’ 또 면제
세월호 유족들이 지난 9일 새벽 숨진 아들딸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를 찾아갔다. 유족들은 <한국방송>(KBS)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의 파면 등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청와대가 ‘한국방송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실제 김 국장은 이날 오후 자진 사퇴했다.
23일 <한국방송>의 기자와 피디 등도 같은 장소인 청와대 앞을 찾았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당장 국민에게 사죄하고, 한국방송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방송의 양대 노조(새노조·1노조), 한국방송 기자·피디·경영·기술인협회 등 노조와 방송사 모든 직군 대표자들이 함께했다.
김시곤 전 국장이 최근 ‘길환영 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추려 보도에 간섭했다’고 폭로하자, 한국방송 기자 등은 이날까지 닷새째 길 사장의 사퇴와 보도의 독립성을 요구하면서 제작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방송 구성원 대다수는 “김 전 국장의 폭로로 한국방송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투쟁에 나서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등 정부에 불리한 소식은 줄이고, 박 대통령의 외국 순방 등 유리한 소식은 키우는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김 전 국장의 폭로로 청와대의 보도 외압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는데,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길 사장의 사퇴 거부도 청와대 뜻에 따른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지금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로는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방송 사장은 이사회에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과 야당 몫 4명으로 구성된다. <문화방송>(MBC)도 마찬가지다. 사장을 선임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여당 몫 6명과 야당 쪽 3명으로 구성된다. 청와대가 사실상 지금의 길환영 사장과 안광한 문화방송 사장을 임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웠으나, 집권 뒤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박근혜 정부의 언론 정책에 ‘복무’하는 모양새다. 최성준 방통위장이 지난달 8일 새로 취임했지만, 청와대는 아직도 야당이 추천한 고삼석 내정자의 상임위원 임명을 미루고 있다. 야당 몫의 위원이 빠진 가운데, 방통위는 계속 청와대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날도 방통위 상임위원회를 열어 여권 편향의 종편(종합편성채널) 등이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을 내지 않도록 사실상 결정했다. 지난해에 이어 발전기금 분담을 1년 더 면제해준 ‘특혜’이다. 야당 추천의 김재홍 상임위원은 “광고 매출액의 1%라도 징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또 박근혜 정부는 심의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통해 손아귀에 틀어쥐었다. 방송 관련 전문성이 없음에도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낙하산으로 위원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김광선 피디(PD)연합회 정책국장은 “박효종 위원장을 통해 ‘정치 심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마추어라고 보일 정도로 너무 강압 일색”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방송의 독립성이 유지될 때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결국 정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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