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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같은 기자끼리 왜 이래” 하는 분들에게

등록 2015-01-28 19:17수정 2015-03-19 11:27

지난 15일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 진실을 좇는 언론사의 신참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화면 갈무리
지난 15일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 진실을 좇는 언론사의 신참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화면 갈무리
김 기자의 미(디어) 수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스비에스)를 뒤늦게 몰아봤습니다. ‘기자를 다룬 역대 한국 드라마 가운데 가장 볼만하다’는 주변인들의 한줄평에 혹했죠.

다큐가 아닌 픽션이라, 드라마는 판타지로 가득합니다. 마녀사냥식 언론 보도의 피해자인 기하명(이종석)과,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 가상의 질병인 ‘피노키오 증후군’을 앓는 최인하(박신혜)가 각각 유명 방송사 <와이지엔>(YGN), <엠에스시>(MSC) 기자로 입사하며 겪는 일이 극의 중심이죠.

그런데 이 판타지들, ‘기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한 기막힌 설정이더군요. 잘못된 언론 보도의 피해자로서 ‘복수’를 꿈꾸는 하명에게 기자란 직업은 처음엔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는데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저널리즘을 자신의 출세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기자와 사주 탓임을 깨닫고는, 하명은 그들과 다른 길을 택해요. 하명은 마지막회에서 여론조작을 지시한 ‘몸통’을 마주하고도, ‘피해자’로서 한풀이를 하는 대신 공익을 추구하는 ‘기자’로서 질문을 던집니다.

국내 1호 ‘피노키오’ 기자인 인하는 취재·보도 윤리 문제를 더 노골적으로 묻습니다. 인하는 경비원을 속여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을 구하는 일 따위는 못하지만, 피노키오로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공감·소통하며 사건의 ‘이면’을 캐는 데 성공합니다. 자신이 속한 방송사의 비리 문제까지도 보도해야 한다고 간부와 동료들을 설득하는 패기(?)도 인하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죠. 과연 볼만했습니다.

미디어 담당 기자로서 제가 가장 부러웠던 건, 언론 간 비판 보도였어요. <엠에스시> 보도국 간부가 언론 윤리에 어긋난 일을 한 사실이 유력 신문들에 큼지막하게 실린다든지, <와이지엔> 사회부 캡(경찰 담당 팀의 팀장)이 <엠에스시>의 여론조작 의혹에 기자들을 여럿 투입해 심층 취재를 하는 일들 말입니다.

“언론인과 언론기관이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 사기와 범죄 등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료들의 침묵 속에 덮여 그대로 지나가는 한 언론의 직업윤리는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1947년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미국의 ‘허친슨 보고서’ 결론 부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보고서는 언론끼리 투명한 상호비판을 활발히 하라고 권고하죠. 우리 법원도 2000년대 초 “매체 간의 광범위한 상호비평의 활성화는 언론의 부패를 막는 안전판이자 국민의 정보선택권을 넓혀 올바른 여론형성에 기여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 가운데 언론 간 비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디어 전담 기자를 둔 곳은 많지 않습니다.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으로 만든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때부터 ‘여론매체부’를 독립 부서로 설치해 신문·방송을 공식 취재 영역에 포함시킨 ‘특이 사례’고요. 방송에선 <한국방송>(KBS)이 최초로 2000년 시사 프로그램 안에서 격주로 미디어비평 꼭지를 내보냈고, <문화방송>(MBC)이 이듬해 미디어비평만으로 이뤄진 프로를 첫 정규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갈 길은 여전히 멉니다. 언론학자 최영재 교수는 한국 티브이의 미디어 비평을 분석해 ‘자성-비평-옴부즈맨-객관적 비평’의 순기능 모델과 ‘선전-공격-홍보(PR)-도구적 비평’의 속성을 갖는 역기능 모델로 나눴는데요. 아직 후자 쪽에 치우쳐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판단입니다.

저도 독자들에게 ‘지네끼리 싸운다’는 인식 대신, ‘감시견을 감시하는’ 걸로 다가갈 기사를 쓰기 위해 고민합니다. “같은 기자끼리 왜 이래” 같은 다른 기자의 항의를 들을 때가 있는데요. 이들에겐 미디어 담당 기자의 취재가 거친(!) 미디어 환경에서 함께 살아남으려는 ‘애정’ 표현으로 여겨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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