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합헌 결정 이전 보도 뜯어보니
9월28일 시행 앞두고 기획 시리즈 등 집중 보도
“규정 모호·실효성 의심·과잉 입법” 고정 레퍼토리
법 시행이 가져올 혼란상만 자극적으로 부각
“경기 침체, 내수 축소” 앞세워 부정적 인식 전달
언론, 기업, 정책 담당자의 편협한 이해관계 대변
9월28일 시행 앞두고 기획 시리즈 등 집중 보도
“규정 모호·실효성 의심·과잉 입법” 고정 레퍼토리
법 시행이 가져올 혼란상만 자극적으로 부각
“경기 침체, 내수 축소” 앞세워 부정적 인식 전달
언론, 기업, 정책 담당자의 편협한 이해관계 대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28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이 법이 예정대로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이 법의 부정적인 효과를 예단하는 보도에 집중해온 언론들로서는 허탈한 결과다.
최근까지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대부분 ‘법 규정이 모호하고 적용대상이 너무 많아 실효성이 의심된다’,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 영역을 적용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과잉 입법이다’, ‘내수 위축 및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 등의 비판에 주력해왔다. 이달 들어 ‘김영란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 제목의 8회 기획 시리즈를 내놓은 <동아일보>는, 첫회에서 김영란법 시행 뒤 같은 학술포럼에 참석한 사립학교 소속 의사와 공익재단 소속 의사가 서로 다른 가격의 식사를 제공받는 가상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제 공무원과 언론사 종사자, 교사 및 그들의 가족 등 400만명은 교제를 위한 식사, 선물, 경조사비 등의 영역까지 도덕과 상식이 아니라 법률로 규제받는다”고 썼다. 7월19~21일 ‘김영란법 카오스’란 제목의 기획 시리즈를 내보낸 <매일경제>는 첫회 기사에서 ‘부정청탁’으로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는 사례들을 제시하며,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모든 국민이 ‘김영란법 전문가’가 되어야 예기치 않은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치 김영란법이 모순투성이라 시행되면 ‘마구잡이’ 처벌이 이뤄질 것처럼 쓴 것이다.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학술포럼 만찬이 예외사유(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음식물)에 해당하는 경우 가격을 차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공직자 등의) 가족이 아닌 배우자만 법 적용 대상이며, 직무관련자로부터의 식사, 선물, 경조사비만 규제대상”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이 ‘복잡하고 모호하다’고 지적하는 실제 법 적용 사례들도, 부정청탁에 해당하는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는지, 예외조항에 포함되는지 등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대체로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경기 침체’, ‘내수 위축’ 등은 김영란법의 부정적 효과로 집중 거론되는 ‘단골 메뉴’다. 시행령 발표 직후인 5월10일, 매일경제는 1면 머리기사에서 “정부가 내수 경기 위축은 물론이고 모든 인간관계마저 얼어붙게 해 한국 경제를 ‘겨울왕국’으로 전락시킬 것으로 염려해온 김영란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고 전했다. 다음날 2면 기사에는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2700만명의 15%에 달하는 400만명이 법 적용 대상이 되면 내수가 직격탄을 맞는다”, “82조원 규모의 외식산업과 15조원 규모의 골프산업이 타격을 입고, 내수산업 고급화와 고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이 원천 배제된다” 등의 주장을 담았다. <조선일보>는 5월12일치 1면에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 제목의 기사를 싣고 “김영란법 시행으로 선물이나 경조사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판매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3면에는 김영란법의 상한액 규정에 따르면 사과 12개를 담은 선물세트가 7개로, 수삼 9뿌리를 담은 선물세트가 4뿌리로 줄어든다는 내용의 그래픽을 실었다. 다른 매체들도 기획 시리즈 등에서 이런 식의 주장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경기 침체, 내수 위축 우려는 김영란법과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다. 일각에서는 “만약 김영란법으로 내수가 위축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뇌물(부정청탁)로 돌아간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단체 등이 제시한 각종 추정치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법 시행이 가져올 혼란상에만 초점을 맞추는 ‘흠집 잡기’식 보도의 배경에는 낡은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이어온 언론과 기업, 정책 담당자들의 불만이 반영됐다. 그것을 바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 김영란법의 핵심 취지”라고 비판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이 자신과 기업, 정책 담당자 등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의 편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경기 침체, 내수 위축 등 독자들이 쉽게 반응할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앞세워 이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조선일보> 5월12일치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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