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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바로 서는 언론을 보는 게 최고의 항암제

등록 2016-12-30 19:32수정 2016-12-30 20:10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해직 언론인 이용마
“현재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뀌는 그 순간까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편파보도가 더 기승을 부릴 거라고 봐요.”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엠비시 해직기자가 자연치료를 위해 머물고 있는 남양주 축령산 기슭의 한 요양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2016년의 마지막날. 해직된 지 1763일째인 이용마는 여전히 출근을 저지당하고 있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현재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뀌는 그 순간까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편파보도가 더 기승을 부릴 거라고 봐요.”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마 엠비시 해직기자가 자연치료를 위해 머물고 있는 남양주 축령산 기슭의 한 요양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2016년의 마지막날. 해직된 지 1763일째인 이용마는 여전히 출근을 저지당하고 있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호젓한 산길이었다. 여름 한철 붐볐을 펜션의 현수막이 빛바랜 채 나부끼고, 대목이 지난 음식점은 문을 닫았다. 도심 광장에서 주말을 보내는 몇 주 사이, 가을은 소리 없이 저물었나 보다. 마른 잎을 떨군 나무들은 단단한 속살 속에 정기를 모으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앙상하지만 강인한 나목 숲 사이로 계곡이 깊었다. 수량이 많지 않아 물소리는 잔잔하지만, 얼지 않은 계곡물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축령산 기슭의 한 요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입구에 도착해 전화를 걸자, 그가 현관문 바깥으로 나와 손을 흔들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적적하실 텐데, 여기 인터넷은 되나요?

“그럼요. 촛불집회도 열심히 보지요. 요즘 최고의 항암제예요. 하하하~.”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용마(47) 기자는 해직 언론인이다. 2012년 엠비시(MBC) 파업 때 노조 홍보국장이란 이유로 첫 번째 해고자가 되었다. 해고무효소송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지만 회사는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고 1년8개월째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복막암 진단을 받았다. 그에겐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 쌍둥이와 아내가 있다. 요양원에는 팔순 노모가 와서 그의 식사수발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난 지 이틀 후, 박근혜 탄핵안은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주류언론과 종편은 일제히 ‘촛불민심의 승리’를 선언했다. 같은 시간, 이용마 기자는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렸다.

“탄핵안 가결 이후가 더 문제다. 국회에서 탄핵안 하나 통과시키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리고 힘들었는데, 국가와 사회의 중추기관을 장악한 자들이 쉽게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앞으로 온갖 술수를 다 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기득권의 목소리만 반영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현재의 언론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반하는 세력은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 시민혁명은 그때 비로소 이루어진다.”(이용마 페이스북. 12월9일 오후 5시 56분)

2012년 MBC 파업 당시 첫 해고자
해고무효소송 1·2심 승소했으나
복직거부로 최종심 기다리던 중
지난 9월 갑자기 복막암 진단
자연요법·항암식품으로 몸 다스려

‘강자에 약한’ 현실의 기자들
삼성 비판하는 기사 쓰고 나면
삼성·지인·회사 돌아가며 압력
사내게시판에 ‘삼성공화국’ 글 쓰자
라디오방송 편집부로 전보발령

“남들은 저더러 무료하고 심심하겠다고 하는데,(웃음) 그렇지 않아요. 하루 일정이 굉장히 빡빡해요.” 이용마 기자는 수술 대신 자연치유에 의지해보기로 하고 경북 영천의 농가에서 한 달쯤 요양을 한 뒤 경기 남양주 축령산 기슭의 한 요양원으로 옮겨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 자연요법과 항암식품으로 몸을 다스리는 중이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들은 저더러 무료하고 심심하겠다고 하는데,(웃음) 그렇지 않아요. 하루 일정이 굉장히 빡빡해요.” 이용마 기자는 수술 대신 자연치유에 의지해보기로 하고 경북 영천의 농가에서 한 달쯤 요양을 한 뒤 경기 남양주 축령산 기슭의 한 요양원으로 옮겨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 자연요법과 항암식품으로 몸을 다스리는 중이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빠가 좀 아프단다’

“곰보배추차예요. 이게 염증에 좋대요.”

그가 찻물을 끓여 찻잔에 따라주며 말했다. 쌉싸름하면서 뒷맛이 개운했다.

-항암치료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수술은 안 했어요. 따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진 않아요.”

-정말요? 10월 중순에 수술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려고 했어요. 근데 9월초에 복강경 수술로 조직검사 받고 난 뒤에, 요로결석이 와서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갔어요. 통증이 심해서 잠도 못 자고 고생을 하다 보니까 1~2주 만에 체중이 6킬로나 빠져서 체력이 바닥나다시피 했어요. 그 상태로 수술을 받는다는 게 겁나더라고요.”

-원래 병원에서 수술을 권하긴 한 거예요?

“처음 간 병원에선 수술 못한다고 했어요. 복강경 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콩을 쫘르르 뿌려놓은 것처럼 종양이 솟아 있다고…. 복막암에 권위 있는 의사가 있다고 해서 다른 병원에 갔는데 그분은 한번 수술을 해보자 하더라고요. 근데 얘길 들어보니까 수술 규모가 굉장히 커요. 복막을 다 뜯어내야 하고, 소장도 거의 다 잘라내야 하고, 대장도 일부…. 수술 규모가 크다 보니까 수술시간만도 12시간쯤 걸린다고.”

생각지도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복막암이 원체 희귀암인데다가 말기가 되기까진 자각증상도 거의 없어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수술을 한다 해도 12개월 생존율이 50%라는데 일상생활을 거의 포기한 채 긴 시간을 누워서 보내야 한다는 데 회의가 들었다. 수술 대신 자연치유에 의지해 보기로 하고 경북 영천의 농가에서 한 달쯤 요양을 한 뒤 남양주로 장소를 옮겨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 자연요법과 항암식품으로 몸을 다스리는 중이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새벽에 일어나면 운동부터 해요. 아침 먹고 조금 쉬었다가 10시경부터 항암식품을 먹어요. 아까 내 방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다 항암식품들이에요. 종류가 많아서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먹다 보면 오전이 금방 지나가죠. 오후에는 밥 먹고 등산을 갑니다. 처음엔 조금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요즘엔 하루 1~2시간은 거뜬해요. 등산 후엔 샤워하고 항암식품들 먹고, 시간 나면 스스로 뜸을 뜨기도 하고, 저녁식사 후엔 족욕을 한 시간 정도 하고요.”

-완전히 풀케어로 관리를 아주 잘하고 계시네요.

“남들은 저더러 무료하고 심심하겠다고 하는데,(웃음) 그렇지 않아요. 하루 일정이 굉장히 빡빡해요.”

-아이들은 자주 보세요?

“여기 온 지 한 달 반쯤 되는데 그사이 두 번 왔나? 원래 우리 집이 서울인데, 판교 청계산 근처로 이사하기로 했어요. 공기 좋은 곳으로. 오늘 잔금 보내는 날이라고, 나더러 하라네요. 마누라가 자기가 하면 되는데 꼭 그런 건 나를 시켜요.(웃음)”

그 아내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공기 좋은 동네의 새집이 당신 집이니 얼른 쾌차해서 돌아오라는 뜻이 아닐지.

-애들은 아빠가 왜 여기 있는지 아나요?

“알아요. 얘기했어요. 국립암정보센터 사이트에서 보니까, ‘아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숨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뭐라던가요?

“작은놈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아빠 아픈 거 함께 아팠으면 좋겠대요. ‘왜?’ 하니까 ‘아프면 아빠랑 여기 함께 있을 수 있지 않겠냐’고….”

대한민국은 삼성장학생의 나라

이용마는 남원에서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문화방송에 입사한 것은 96년. 해직되던 2012년까지 그는 남들이 꺼려하는 재벌 비리, 특히 삼성 비리에 대한 보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혔다.

-원래 꿈이 기자였어요?

“아뇨. 기자 되겠단 생각은 기자시험 볼 때 처음 했어요.(웃음) 아버지가 지방공무원이셨는데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행정고시 보고 입신양명, 관료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그래서 정치학과에 갔군요. 근데 왜 고시를 안 봤어요?

“그게… 87년에 대학에 입학했잖아요.(웃음) 87년 6월항쟁을 겪으면서 사회에 눈을 뜨게 된 거죠. 고시를 봐도 군사정부에 복무하는 결과밖에 안 되는데 이게 과연 맞는 길이냐 회의가 들었어요. 뭘 할지 결정하기보다 우선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는 사이 89년 독일이 통일되고 91년에 소련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죠. 석사를 하고 군대를 마칠 때쯤부터 뭘 할지 고민하다가 택한 게 기자였어요. 기자는 적당히 공부도 하면서 현실을 발로 뛰면서 접하니 좋겠다 싶었죠. 나중에 보니 잘못 알았던 거지만.(웃음)”

-해보니 어떻던가요? 기자가 적성에 맞았어요?

“저는 기자의 가장 큰 장점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경찰서 서장실 발로 박차고 들어가고 큰소리치지만, 관공서 경비원이나 길거리 환경미화원에게는 기자라고 큰소리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겸손해야죠.”

-현실은 반대 아닌가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무관심한 기자들.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게 김영삼 정권 말기고,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았죠. 지금처럼 정치권력이 재벌을 대변하면서 공영방송에 압력을 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재벌이 직접 나서서 언론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2004년이던가, 삼성 이재용의 불법 상속문제에 대한 고발이 공소시효 7년이 다 돼가는데,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하는 거예요. 마침 검찰 출입 기자일 때라 그걸 가지고 계속 기사를 썼죠. 근데 다른 기자들은 스트레이트 기사도 안 쓰는 거예요.”

-왜요?

“나도 답답해서 물어봤어요. 다른 언론사 검찰 출입 기자한테 ‘왜 안 쓰냐’고. 그랬더니 ‘다 알면서 왜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거 쓰면 삼성에서 전화 오고 지인한테서 전화 오고, 회사에 가면 부장이 따지고 들고, 이래저래 기사가 빠지는데 뭐하러 쓰냐고….”

-실제로 그렇던가요?

“일단 쓰게 되면 삼성이 제일 먼저 전화해요.(삼성 불법상속 고발 건을 방치하는) 검찰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니까 삼성이 전화해서 ‘왜 검찰을 비판하냐?’고 항의하고, 그다음엔 삼성이 제 지인들을 동원해서 전화를 하고, 그다음엔 회사 선배들이 또 찾아오고. 이게 굉장히 피곤한 일이죠. 영화 <내부자들> 보면 검사가 선배 검사 부름을 받고 모임에 가보면 재계 당사자가 와 있고 그러잖아요. 그런 식이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술 먹고 어울리다 보면, 10개 쓸 것을 7~8개로 줄이고, 다시 5~6개로, 그러다가 빼게 되고. 더 나아가서 오히려 자기가 재벌을 위해 로비하게 되는 상황까지 가요. 언론이나 검찰, 정부에 ‘삼성장학생’이 있단 얘기가 나오는 건 허튼 말이 아니에요.”

분통이 터져서 사내 보도국 게시판에 ‘삼성공화국’이라고 몇 차례 글을 쓰기도 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모두가 함구했고 돌아온 것은 라디오뉴스 편집부로의 전보발령이었다.

-근데 계속해서 삼성 관련 보도를 했지요. 왜 그렇게 삼성 문제에 매달린 거예요?

“내가 매달린 게 아니라 삼성이 날 쫓아다녔어요.(웃음) 처음엔 내가 경제부 기자여서 썼고 그 후 금융팀에 있었으니 썼고, 그 후 삼성 불법상속 문제가 검찰에 고발되었을 때는 내가 또 검찰 출입이라서…. 기자로서 대한민국 정부 부처를 두루 돌았는데 그 경험 속에서 깨달은 건 대한민국 핵심 부처가 모두 삼성에 장악되어 있다는 거였어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게 겉으로 보면 정치권력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삼성의 힘이라고요. 어차피 대통령은 5년 가는 건데, ‘권불5년’에 재벌은 3대, 4대 세습을 하잖아요. 재벌은 무소불위의 권력, 대한민국의 가장 굳건한 기득권 세력이죠. 그 핵심에 삼성이 있고요. 이걸 개혁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사회의 개혁이라는 건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한동안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한 트위터에 “이번 시민혁명이 갈 방향. 가진 자와 없는 자들 간에 또다시 벌어진 건곤일척의 승부! 기득권 세력에게 또 권력을 뺏길 수는 없다”는 글을 올렸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용마 기자는 한동안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한 트위터에 “이번 시민혁명이 갈 방향. 가진 자와 없는 자들 간에 또다시 벌어진 건곤일척의 승부! 기득권 세력에게 또 권력을 뺏길 수는 없다”는 글을 올렸다. 남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라고 왜 억울함이 없을까마는…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긴 인터뷰가 그의 체력에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점심식사를 하고 좀 쉰 뒤에 다시 만나자고 하고는 잠시 차를 몰아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나는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2012년 1월30일부터 7월17일까지 170일간에 걸친 파업 이야기. 이명박의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은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6명이 해고되고 총 250여명이 정직, 징계, 부당한 전보발령을 받았다. 파업을 시작한 건 이명박 때문이었으나 파업을 패배로 마무리 지은 건 박근혜 때문이었다. 유능한 기자와 피디들은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고, 바른말 하는 조합원은 승진에서 누락되었으며, 한때 30%대이던 엠비시 뉴스의 시청률은 2~3%대로 떨어졌다. 박근혜가 물러난다고 해서, 몰락한 공영방송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이용마는 다시 건강한 몸으로 복귀해서 재벌 비리를 파헤치는 보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식사 잘 하셨어요? 원래 산행하실 시간인데.

“괜찮아요.”

-2012년 파업 이야기를 여쭤보려고요.

“네.”

-투병중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울분과 억울함, 한편으론 죄책감과 미안함의 복합적인 감정에 휘말렸습니다. 2012년 억울하게 해직당하고 그 모진 고초를 겪지만 않았어도 이런 병마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잠시 침묵) 두 가지 감정이 있어요. 발병 소식 전해지면서 후배들이 문자나 전화를 많이 보냈어요. 첫 번째 감정이 억울함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싸우면서 버티는데, 거기다가 암까지 생긴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 감정들…. 저라고 그런 마음이 없겠어요? 한편으론, 그간 너무 빡빡하게 쉼 없이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잠깐 쉬어 가라는 뜻인가 보다.”

-제일 견디기 힘든 괴로움은 뭐예요?

“사실 제일 큰 어려움은 후배들 보기 미안한 거죠. 우리들이야 상관없지만 후배들은 한참 일해야 하는데 그 많은 숫자가 현업에서 배제되었으니까. 우리가 파업에서 이겼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MB 낙하산 김재철 퇴진 외친 파업
대선 앞둔 박근혜 후보 쪽에서 연락 와
‘파업 풀면 순리대로 해결하겠다’ 약속
파업 중단한 날, 파업참가자들에겐
‘MBC아카데미’ 전보 인사발령 떨어져

간부들은 ‘정권 바뀌면 죽는다’ 생각
“선거 다가올수록 편파방송 더 기승”
최근 다시 시작한 트위터에 올린 글
“기득권 세력에게 또 뺏길 순 없다”
2012년 파업 때 쓰라린 경험 반영

-이번 촛불집회에서 엠비시나 케이비에스(KBS) 취재진의 경우 ‘꺼져라!’ ‘차 빼라’ 같은 야유를 받고 철수하거나, 회사 로고도 못 단 채 옥상에 올라가서 멀찍이 리포팅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한때 엠비시는 공정보도 조항에 관한 한 가장 진보적인 단체협약안을 가진 모범사례로 꼽혔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가슴 아프고 안타깝죠. 우리가 2012년 파업을 할 때도 그랬어요. 당시 파업을 했던 여러 계기 중의 하나가, 2011년 하반기에 한-미 에프티에이(FTA) 반대 시위를 하는데 엠비시 로고를 달고 못 나갔어요. 하도 욕을 먹어서.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 쏘는 거에 대해 아무 비판도 안 하고, 김문수 도지사가 119 전화해서 논란이 되었을 때도 엠비시는 보도 안 하고. 이명박 사저 관련된 보도 하는데 우린 청와대에서 주는 대로 받아쓰기나 하고. 그런 건들이 몇 차례 누적되다가 확 터진 거죠.”

-그래서 2012년 1월30일날 파업에 들어갔어요. 근데 별 소득 없이 170일 만인 7월17일 파업을 접었지요. 파업 자체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나 보죠?

“파업자 수가 줄진 않았어요. 오히려 파업 끝날 때 참가자 수는 최고조에 달했죠. 처음 500여명으로 시작해서 끝날 때 800여명까지 갔으니까. 근데, 회사는 막무가내로 ‘배 째라’ 식이었거든요. 이 정도 왔으니까 대선(12월) 때까지 가보자 하는 분위기. 들리는 얘기로는, 청와대에서 ‘이참에 엠비시의 디엔에이(DNA)를 싹 바꾸자’고 했다는 거예요. 우린 이미 170일 파업을 했어요. 근데 엠비시 사측은 대체인력을 계속 보강해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입장이고, 그때까지 6개월간 조합원들은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았는데, 대선까지 가면 또 6개월을 그렇게 지내야 했어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는데, 때마침 우리한테 출구를 제공해준 것이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였죠. 박근혜 쪽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한테 약속을 한 거예요.”

박근혜의 은밀한 약속, 그리고 기망(欺罔)

-어떤 약속이었죠?

“지금 국민의당에 간 이상돈 교수가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잖아요. 그분을 통한 전언은 ‘노조가 먼저 파업을 풀어라. 그럼 내가 순리대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어떻게 믿죠?

“우리도 그게 박근혜 당시 후보의 생각인지 확인을 해야 했으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서 ‘엠비시 문제가 해고까지 가게 되고 그래서 참 유감이다’ 같은 멘트를 해달라고 했어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데, 여하튼 우리가 원한 걸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틀 뒤에) 박근혜 당시 후보가 발언한 거예요. 그다음에도 연이어서 이상돈 교수를 통해 ‘노조가 명분을 걸고 들어오면 나중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고요.”

같은 시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도 ‘김재철 사장 해임’의 뜻을 밝히고, 국회도 ‘언론 관련 청문회가 개최되도록 노력한다’고 약속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엠비시 노조는 7월17일 파업을 중단했다. 그날 밤 11시쯤, 파업참가자 상당수를 ‘엠비시 아카데미’에 교육을 보낸다는 인사발령이 떨어졌다. 1, 2, 3기에 걸쳐서 100여명의 조합원을 현업에서 떼어놓기 위해 만든 명목상의 교육이었다. 급하게 짜느라 ‘브런치 만들기’ 같은 황당한 교육프로그램들로 시간을 때웠다.

-김재철 사장의 해임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죠?

“파업을 접고 8월에 새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문화방송 대주주) 이사진이 선임되었는데, 10월에 김재철 해임안이 논의될 때 김무성(당시 박근혜 후보 총괄 선대본부장)이랑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방문진 여당 인사에게 전화해서 해임안을 부결시켰어요.”

-사기당했군요.

“사장 해임안이 부결된 뒤, 11월14일에 기자회견을 하고 그 사실(박근혜 약속과 배신)을 조목조목 폭로했죠. 이상돈 교수도 그런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고요. 근데 아무런 반향이 없었어요. 조중동을 비롯해서 기존 언론도 단 한 줄도 쓰지 않았고요. 우리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대선 전이었는데도요? 야당은 왜 그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우린 야당에 대해서도 믿음이 안 가요. 저 사람들이 도대체 언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지.(한숨) 항상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그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건 별로 없어요.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걸 내놓으면서 국민 지지를 얻을 생각은 안 하고 여당이 잘못하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시소게임만 하고 있으니….”

그 이후 원조친박은 진박, 비박, 탈박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탄핵 가결 이후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으로 갈라졌지만 공영언론의 역사에 큰 변곡점은 없었다. 일직선의 추락. 언론의 ‘흑역사’를 부른 부역세력들은 지금도 각 언론사의 수장으로 굳건하다.

엠비(MB) 정부 시절 각 언론사에서 해직된 기자와 피디들이 2013년 1월2일 언론회관 앞에 모였던 당시 모습. 오른쪽부터 조승호 와이티엔 기자, 박성호 엠비시 기자협회장,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황일송 국민일보 기자, 이용마 엠비시 노조 홍보국장, 강지웅 엠비시 노조 사무처장, 정영하 엠비시 노조위원장, 우장균 와이티엔 기자, 노종면 와이티엔 노조위원장, 최승호 엠비시 <피디수첩> 피디, 박성호 엠비시 전 노조위원장, 권석재 와이티엔 기자, 정유신 와이티엔 돌발영상 피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엠비(MB) 정부 시절 각 언론사에서 해직된 기자와 피디들이 2013년 1월2일 언론회관 앞에 모였던 당시 모습. 오른쪽부터 조승호 와이티엔 기자, 박성호 엠비시 기자협회장,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황일송 국민일보 기자, 이용마 엠비시 노조 홍보국장, 강지웅 엠비시 노조 사무처장, 정영하 엠비시 노조위원장, 우장균 와이티엔 기자, 노종면 와이티엔 노조위원장, 최승호 엠비시 <피디수첩> 피디, 박성호 엠비시 전 노조위원장, 권석재 와이티엔 기자, 정유신 와이티엔 돌발영상 피디.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특권 타파 없이는 개혁도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확정되면 공영방송의 기조에도 변화가 올까요?

“현재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뀌는 그 순간까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지금 방송사 간부들은 정권 바뀌면 자기들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당이 재집권하도록 기를 쓸 테니까요. 그래서 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편파보도가 더 기승을 부릴 거라고 봐요.”

-정권이 바뀐다면요?

“야당이 집권하면 뭔가 달라지겠지 해가지곤 별로 기대할 게 없어요. 그동안 공정방송을 위해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 그중에 몇 명이나 되나요? 이번 탄핵 과정처럼, 아래로부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치권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용마는 해고된 후,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한편 국민라디오에서 <이용마의 한국 정치>를 진행했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그는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 이번 겨울은 무척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내년 봄쯤엔 어떤 상황이 될까요?

“지금은 누구도 예측불가입니다. 알량한 지식인의 예측, 다 필요 없어요.”

-개헌 얘기도 나오는데요.

“제왕적 대통령제라서 개헌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다 자기들 권력 연장 위한 술수일 뿐이죠. 나눠먹기 하자고. 왜 제왕적 대통령이 나왔느냐? 대통령이 여당과 권력기관을 다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렇죠.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동원해서 통제하니까. 그럼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은 왜 대통령한테 휘둘리느냐? 대통령이 인사권 쥐고 있으니까 그렇죠. 그럼, 대통령한테서 그런 기관 인사권을 뺏으면 돼요. 국민들이 뽑도록 하면 돼요. 전 공영언론도, 국민배심원제처럼 그렇게 성별 연령별 균형 맞춰서 심사단 구성해서, 사장 후보들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 보고 뽑게 하면 좋겠어요. 대통령 뽑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듯 언론사 사장 뽑는 데도 전문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8월30일자로 멈춰 있던 트위터를 최근(12월5일) 재개하셨더군요. “이번 시민혁명이 갈 방향. 가진 자와 없는 자들 간에 또다시 벌어진 건곤일척의 승부! 기득권 세력에게 또 권력을 뺏길 수는 없다”고 쓰셨던데요. 2012년 파업 때 기득권 세력에게 이용당한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얘기처럼 들렸어요.

“2012년 대선 때 야당에서 ‘박정희냐 노무현이냐?’ 이런 황당한 구도를 내세운 적이 있는데 그건 절대 맞지 않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기득권 대 비기득권’ 구도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누가 그런 구도로 갈 것이냐. 야당에 그럴 사람이 있느냐 하는 거죠. 야당조차도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돼서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구도를 펼치지 못한다면,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기존의 세력과 대결하는 구도로 가야 실질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어요. 단순히 대통령 하나 몰아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득세해온 기득권 구조를 깨고 국민적 요구를 정치적 요구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6년의 마지막날. 해직된 지 1763일째인 이용마는 여전히 출근을 저지당하고 있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언론장악 방지법’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에 5개월째 계류 중이다.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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