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민(20)씨는 오는 3월 서강대 중국문화과에 입학한다. 지난해 한차례 낙방의 아픔을 겪었으니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그는 최근 어머니 조규일씨의 권유로 <한겨레> 주주가 됐다. 어머니와 소민씨의 남동생도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어머니와 소민씨를 지난 3일 오후 서울 혜화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소민씨네 집엔 소민씨가 태어나기 전부터 <한겨레>가 배달됐다. 부모님이 결혼을 한 95년 구독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22년째다. 어머니 영향이 컸다. “제가 조금 진보 성향입니다. 조중동보다 한겨레가 우리 현실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하죠. <고발뉴스> 등과 같은 대안미디어 후원금으로도 매달 10만원가량을 냅니다.”(조씨)
지난달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의결을 했을 때 조씨는 직장에 연가를 내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연단에 올라 발언도 했다. 탄핵 이후에도 시민들이 정치가 제대로 가는지 두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대학 도서관에서 28년째 사서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천주교 평신도 모임인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가톨릭 평신도 1만명 서명운동을 펼친 걸 계기로 만들어졌다.
엄마는 <한겨레>를 본 뒤 딸이 읽었으면 하는 기사는 따로 스크랩했다. 입시 준비에 바빴던 소민씨를 위한 배려였다. 딸은 엄마의 이런 정성 덕분에 <한겨레>가 세월호 참사 이후 연재한 ‘잊지 않겠습니다’ 시리즈나 ‘함께하는 교육’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중학교를 다닐 땐 한겨레교육이 마련한 자기주도캠프에도 참여했다. “한겨레라고 하면 신뢰가 갑니다. 고객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느낌이지요.”(조씨)
35살 차이인 엄마와 딸의 생각이 조금 더 가까워진 데는 ‘세월호’란 비극이 자리한다. 소민씨는 세월호 희생 학생들과 같은 나이다. 2014년 5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한달 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취소됐다. 1학년 때는 예정된 해병대캠프가 입소 한달 전에 발생한 사고로 취소된 기억도 있다.
“세월호 이후에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전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도 연예인 열애 이외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소민씨) 도대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이길래, 수백명 학생이 수장되는 걸 막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분노의 마음이 생겼다. “세월호 이후엔 친구들이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페이스북에서 정치적인 기사에 좋아요를 더 눌렀죠.”(소민씨) 엄마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딸이 세월호 이후 페북에 ‘국가에 의해 익살당한 학생들,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란 글을 올렸어요.” 모녀는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나갔고, 딸은 세월호 배지를 교복에 달고 졸업 때까지 다녔다.
엄마와 딸은 지난달 3일 함께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다. 정유라 입시부정에 특히 화가 났다. 소민씨가 고교 1학년 때였다. “딸이 미술 수행평가 과제를 새벽 4시30분까지 하느라 2분 지각을 한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원칙대로 처리해 무단 지각이 됐어요.”(조씨) 엄마는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딸이 지난해 입시에 실패한 데는 비교과 영역의 이 흠결이 작용했을 것으로 확신했다. 딸이 팀 과제물을 도맡아 하느라 2분 지각한 것도 ‘사면’을 받지 못했는데, 정유라가 누린 수많은 혜택은 도대체 무엇인가? 엄마는 “이런 거지 같은 사회를 절대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살았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내 자식에게 절대 물려줄 수 없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는 참언론이 있었으면 해서 한겨레 주주가 됐죠.” 소민씨는 “이제 대학생이 됐으니 신문도 열심히 읽겠다. 한겨레가 더욱 신뢰를 줄 수 있는 그런 언론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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