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한 전직 기자의 ‘미투 선언’, 그리고 이를 향한 지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신문과 방송사에서 일했던 변영건 전 기자는 지난 7일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 사회(직장을 포함한 모든 곳)는 잔인했다”면서 기자로 일하며 겪은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공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첫 직장에서)신입 교육을 담당한 부장은 대부분의 회식자리에서 제 옆에 앉았다. 어떤 날은 웃다가 어깨나 허벅지를 만졌고, 어떤 날은 다리를 덮어놓은 겉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며 피해 사실을 전했다. 또 그는 “그리 친하지 않은 한 남자 선배가 전화 와서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말했다. 웃어넘기고 나니 그 다음 회식을 마치고는 아예 자기 집 방향 택시에 저를 욱여넣었다”고 두 번째 직장 수습기자로 일하며 겪은 일을 털어놨다. 그는 ”끝내 거부하자 가해자가 세워달라 했고, 택시는 그제야 멈췄다”고 적었다. 이외에도 변 전 기자는 다른 언론사 선배와 남성 취재원 등에게도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전했다.
변 전 기자는 또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면접을 보면서 ‘성희롱을 감내할 수 있는가’ 혹은 ‘성희롱의 순간을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따위의 의도를 가진 질문을 종종 받았다. 이런 질문을 받는 상황이 어이없고 화가 났지만 태연한 척 답변했다. 그렇게 ‘나는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사회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저는 피해자가 되어도 입을 열 수 없었다”고 성폭력 피해에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페이스북 글이 “단 한 분에게라도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됐길 기도한다”고 했다. 변 전 기자는 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도 미투 운동에 동참한 글을 두고 “몸담았던 곳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이 사안을 피해를 겪은 전 직장 중 한 곳인 <와이티엔>(YTN)의 ‘최남수 사장 퇴진·공정방송 세우기’ 파업 정당성과 연결지어 해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와이티엔 선배들은 (최남수) 사장 결격 사유를 말하며 ‘성적 대상화 발언’을 꼽고 있다. 또 (회사) 기자협회 등 여러 곳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변 전 기자는 지난 7일 글을 통해서도 또 와이티엔 구성원들이 ‘성적 대상화 발언’에 대해 보인 문제의식 덕분에 피해를 말하는 용기를 얻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변씨의 전 직장 와이티엔 동료들은 그의 ‘미투’를 지지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지난 7일 와이티엔 여기자협회는 성명을 내어 “사건 이후 피해자를 따라다녔을 크나큰 괴로움에 공감한다”며 “좀 더 일찍 들여다보고 고충을 헤아리지 못한 불찰에 대해 선배이자 동료로서 한없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또 협회는 “피해자가 숨겨왔던 기억을 어렵게 꺼내놓았다. 이제 우리가 그 기억의 퍼즐을 함께 맞추며 아픔을 보듬고 상처 치유에 힘을 모을 차례”라며 “와이티엔 여기자협회는 이 연대의 중심에서 피해자와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조 와이티엔 지부도 성명을 통해 “조합원들의 복지 증진을 넘어 근로 여건에 대한 어려움을 살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는 조합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노동조합은 회사가 정해진 사규에 따라 엄정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그에 따른 조처를 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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