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거대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지’인가 ‘반민족·비민주’ 신문인가.
내년 3월5일(조선)과 4월1일(동아) ‘창간 100돌’을 앞둔 두 신문이 민족지를 천명하며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분주하지만 시민사회는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시민행동)이라는 연대기구를 꾸려 이들의 ‘반민족·반민주적 오욕의 역사’를 심판하겠다고 벼른다. 시민행동엔 1975년 유신독재에 항의하다 쫓겨난 두 신문의 해직 언론인으로 구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비롯해 전국언론노조 등 57개 언론시민단체가 참여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을 지난달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나 활동 계획 등을 들었다.
1967년에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한 뒤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8년 만에 강제해직된 김종철 위원장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과 <한겨레> 논설위원, <연합뉴스> 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창간부터 2014년까지 동아·조선의 지면을 낱낱이 파헤친 각 5권짜리 <동아일보 대해부> <조선일보 대해부>의 공동 저자로 두 신문의 사주 방응모와 김성수의 친일 행적 등을 꿰고 있다.
그는 “조선·동아는 100주년을 맞아 자화자찬하고 싶겠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족공동체에 기여한 공적보다 파괴한 죄업이 훨씬 크다. 이들이 국민을 배신하고 ‘일본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고 대한민국 독재정권을 찬양했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무엇보다 이들에게 기만당해온 사람들과 젊은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널리 알려 경각심을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 위원장은 조선일보에 대해선 “태생부터 친일신문이었다”는 점을 설파한다. 그는 “조선은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 핵심인 예종석을 앞세워 조선총독부의 발행허가를 받았다”며 “1933년에 이 신문을 인수한 실질적 창업주 방응모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고가의 고사포를 기증한 대표적 친일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동아일보는 민족지를 표방해 국민주 형식으로 창간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주주인 호남 출신 자본가 김성수가 신문을 사유화했다. 일제강점기에 ‘천황 폐하’에게 거액의 국방헌금 등을 바치며 부일 매국·매족 행위를 일삼았지만 자신들의 역사에서 이런 치부는 다 빼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5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사옥에서 조선일보사가 있는 코리아나호텔까지 두 신문의 반성·사과와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강제해직된 뒤 44년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 못 듣고 이 사건이 그냥 역사 속에 묻힌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동아일보에서 30대에 쫓겨나 70대 중반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가 있는지, 문재인 정권 들어 적폐 청산 의지가 제대로 있는지 참담한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했다.”
1975년 강제해직 언론인은 동아 113명, 조선 32명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분도 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방송을 외치다 쫓겨난 <와이티엔>(YTN), <문화방송>(MBC) 언론인이 현장 복귀한 것과 달리 이들의 긴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지난 10월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5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사옥에서 조선일보사가 있는 코리아나호텔까지 두 신문의 반성·사과와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행진이 열렸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둘러싼 한-일 갈등 국면에 조선일보가 일본 정부를 두둔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데 대해 그는 “일본군이 1931년에 만주를 침략하며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이에 조선일보는 전쟁을 일으켜서 아시아를 정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며 “지소미아로 불거진 친일적 논조의 뿌리는 바로 여기 있다. 본인들은 민족지라고 하나 일찍부터 반민족지”라고 질타했다.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창업주 김성수의 반민족 친일행위가 인정돼 지난해 서훈이 취소”된 사실을 되짚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최근 ‘조선·동아 100년, 거짓보도 100년’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두 신문이 일제엔 친일, 독재시대엔 부역한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자료의 바탕이 된 <대해부> 책을 보면, 조선일보는 방응모가 경영권을 인수한 직후부터 ‘황태자 전하의 어탄생’(1933년 12월24일치) 사설 등 일본 왕실 찬양 기사가 노골화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동아는 1932년 한국애국단원인 이봉창이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를 ‘대불경 사건’으로 보도했다. ‘대불경 사건 돌발, 어로부에 폭탄 투척’(1932년 1월10일치 2면 머리)이라는 보도 외에 재판 때도 ‘대역죄인'이라는 단어를 동원하며 일제 관점으로 사안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황태자 탄생을 봉축하는 사설 등은 조선이 식민지 언론을 자임한 것이라면 동아의 ‘대불경’ 표현은 일제가 일왕에 대해 쓰는 극존칭에서 나온 것으로 스스로 친일 언론임을 인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조선과 동아의 이런 친일·반민족 행태 등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쉽게 전달할지가 요즘 그의 고민이다. 김 위원장은 “이들의 반민족·반통일 역사를 소개하는 백서를 만들어 낭독하는 행사나 동영상 시대인 만큼 언론인 지망자 등을 위한 짧은 동영상 제작도 검토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시민행동은 5일 두 신문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조선·동아, 권력을 향한 욕망의 현대사’라는 주제의 대중 강연을 진행한다. 또 앞으로 두 신문의 ‘패악 보도’ 10개를 선정해 동영상으로 홍보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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