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피디라는 이름 아래 열악하고 비상식적인 대우를 받았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게 해달라.”
<청주방송>(CJB)과 임금인상·부당해고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재학(38) 피디의 유족들이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피디의 유족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추혜선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조사를 통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 피디의 동생 이대로씨는 “형은 청주방송의 주요 프로그램과 행사를 연출해왔고, 회사 쪽도 14년간 형을 피디라고 불러왔으면서 이제 와서 그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 불법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문제를 밝히고, 실질적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피디의 유족은 이 피디가 청주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과정의 문제점도 제기했다. 이 피디의 대리인인 이용우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청주방송이 과거에 받은 노무컨설팅 자료에는 이 피디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는데도 회사 쪽은 이를 숨겼다”며 “재직 중 동료에게 받은 근무실태 진술서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척된 반면 간부 진술서는 증거로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쪽은 회유와 협박으로 이 피디의 동료들이 위증하게 만들었고 법원은 이에 편승하고 동조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간 일했던 이 피디는 지난 4일 저녁 숨진 채 발견됐다. 월 160만원가량의 낮은 임금 등 열악한 처우를 견디며 일했던 이 피디는 2018년 4월 청주방송 쪽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이 피디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그해 8월 청주지법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22일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2018년 ‘방송계 갑질 119’에 메일을 보내 “14년의 세월, 언젠가 고생한 거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달려온 시간이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피디 사건은 방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합리한 계약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한국피디연합회, 충북 노동단체, 전국언론노조 등의 비판 성명이 잇따랐다. 이에 지난 9일 청주방송은 “유족과 협의해 이재학 피디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프리랜서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추혜선 의원은 사건의 해결은 물론 방송계의 고질적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추 의원은 “고용노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특별근로감독부터 비정규직 사용 실태 조사까지 주어진 권한을 모두 사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며 “방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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