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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철과 조국’ 사랑한 포스코 주역 눈감다

등록 2013-12-08 19:21수정 2013-12-08 22:18

재일동포 제철전문가 고 김철우
재일동포 제철전문가 고 김철우
재일동포 제철전문가 고 김철우

50년대 한국 최초 도쿄대 연구교수
고 박태준 도와 포항제철소 건설
1973년 간첩으로 몰려 6년 옥살이
억울함에 자살시도…작년 무죄받아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기업 도와
포스코를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하게 한 주역인 재일동포 기술자 김철우(사진)씨가 7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87.

‘철과 조국’을 사랑한 고인은 1926년 3월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유년기를 거친 그는 금속학도의 길을 택해 도쿄공업대학, 도쿄대학 대학원을 거쳐 1956년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민족 차별이 극심하던 1950년대 일본에서 공무원(도쿄대 연구교수)이 된 조선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훌륭한 제철 전문가로 성장한 그를 주목한 이가 있었다.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1927~2011)이다. 고인은 1965~66년께 박태준을 처음 만나 “제철소에 관심이 있으니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는 이후 한국이 제철소를 만들 수 있게 온갖 조력을 했다.

1970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중공업 연구실장을 맡아 포항제철소 전체의 그림을 그렸다. 포철 1호기 용광로를 사실상 설계한 것도 그였다. 1971년에는 도쿄대를 휴직하고 귀국해 기술 담당 이사로 공장 설립을 이끌었다. 포철을 만든 것은 박태준이지만, 기술 부분에서 이를 실현시킨 것은 김철우였던 셈이다. 당시 일본 후지제철(현재 신일본주금의 전신)의 나가노 시게오 사장이 고인이 만든 제철소 마스터플랜을 보고 “이것을 한국의 기술자가 그렸는가. 이런 대단한 플랜을 만들 수 있다면 종합제철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충성을 다한 고인에게 조국은 ‘간첩’이란 딱지를 붙였다. 1973년 공장 준공을 한달여 남겨두고 보안사에 체포된 것이었다. 1970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귀국한 동생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작원의 말을 믿고 방북한 게 죄였다. 북한은 그에게 동생을 만나게 해주는 대신 일제 강점기 사용하던 제철소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고인은 결국 간첩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6년 반을 복역했다. 유죄 판결 직후 억울함을 견디다 못해 교도소에서 동맥을 잘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인이 자유를 찾은 것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인 1979년 8월15일에 특사를 통해서였다. 그처럼 재일동포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른 김정사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재심 무죄와 원상회복을 위한 모임’ 이사장은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인 1980년 1월 도쿄에서 박사님을 만났더니 신문의 구인난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사이타마현에 있던 아버지의 건설회사로 끌고 와 자리를 만들어준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고인은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신격호 롯데 회장도 찾아갔다고 한다. 김정사 이사장은 “고인이 ‘수위라도 좋으니 일을 시켜 달라’고 말했더니 (신 회장은) 우린 부드러운 것을 만드는 회사로 단단한 것은 잘 모른다며 거절했다는 말을 고인한테서 들었다”고 회고했다.

일본에 재정착한 고인을 고국으로 다시 불러낸 건 전두환 정권이었다. 당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고인을 만류하는 김정사 이사장에게 그는 “김군, 나는 철을 사랑하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80년 영구 귀국한 그는 포스코에서 1989년까지 부사장 대우로 일했고, 최근까지 한국 중소기업들을 도우며 지냈다. 고인에게 큰 고통을 안긴 간첩죄에 대해선 지난해 12월 재심 끝에 무죄가 선고됐다. 그는 2011년 <한겨레> 기자와 만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정사 이사장은 “정말 이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너무 속상하다”며 “포스코를 실질적으로 만든 역사의 증인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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