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5일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등 천주교 5단체 대표들이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재판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및 불고지죄 철폐’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 사건 때문에 바로 다음날 동생 문규현 신부와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가려던 필자(오른쪽 셋째)는 김포공항에서 출국금지를 당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36
1989년 7월6일 김포공항에서 미국행이 막히자 나는 그길로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 있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실로 갔다. 마침 회의를 마친 황인철·유현석·이돈명 변호사와 김승훈·함세웅 신부가 저녁식사를 하러 가려는 참이었다.
저녁 자리에 함께한 나는 앞서 6월30일 방북한 임수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평양에 가서 세계청년학생평화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임수경 학생이 교우랍니다. 세검정성당에서 2년 동안 교리 교사를 했고 온 가족이 다 신자랍니다. 대학생 임수경에 대한 정부의 처사는 너무 가혹합니다. 북쪽에 있는 임수경도 불안하고 나중에 남쪽에 돌아온다 해도 걱정이에요.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는 지하철공사 홍보국장이시던데 신변이 안전하시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사제 한 사람을 파견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것은 사목 차원에서도 굉장히 좋은 기회입니다. 남과 북의 교류를 막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우리 천주교 교리에 맞지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가 그리스도교의 첫째 계명인데 국가보안법은 이 말씀에 위배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첫째 계명을 지키려면 이웃을 고발하고, 증언하고, 죽이라는 법에 항거해야 합니다. 또 지금까지 통일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였습니다. 그것을 뚫어야 합니다. 우리 사제단이 그 금기를 뚫읍시다. 아마 이번 일로 엄청난 통일 논의가 벌어지고,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겪고 넘어야 합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누구를 보낼까, 설왕설래하는데 내가 말했다. “문규현 신부가 있잖습니까? 얼마 전에도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규현 신부 혼자는 어려울 테니 사제 한 사람 정도가 같이 가면 좋겠습니다. 사제로서 임수경을 돕는 것은 목자와 양의 모습입니다. 참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황인철 변호사가 지지하고 나섰다. “도대체 신부님들 이게 뭐하는 거요? 저 어린 학생이 저러고 있는 것이 저 학생만의 문제요? 이 시대의 사제들이 저 학생들과 같이 해줘야 할 거 아니요?”
그 자리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상임위원회를 당장 소집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튿날인 7월7일 사제단은 만장일치로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보내 임수경 학생이 남한으로 올 때 동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며칠 뒤, 김승훈 신부와 함세웅 신부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주에서 의정부까지 5시간이나 걸려 약속 장소에 갔더니 두 사람은 문규현 신부를 보내지 말자고 했다. 나는 이미 사제단의 정식 논의와 결정을 거친 일인데 내가 형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함 신부는 “문규현 신부 죽이는 거야. 안 된단 말이다” 하고 소리를 쳤다. 그는 앞으로 사제단에 닥칠 파란과 규현 신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사제단의 결정을 한두 사람의 뜻에 따라 바꿀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전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사제단의 파견 결정을 규현 신부에게 알릴 방도가 고민이었다. 우리는 미국으로 교포사목을 떠날 예정인 이상섭 신부를 통해 그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 편지를 쓰지 않고 이 신부에게 우리의 전달 사항을 외워서 직접 말로 전달하도록 했다.
나는 규현 신부가 사제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고 걱정은 많았다. 친구인 리수현 신부와 앞으로 대책에 대해 의논을 했다. 밤마다 ‘동생 신부가 죽을지도 모른다’던 함세웅 신부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고민 끝에 아시아 주교회의 인간개발위원회(인성회·OHD) 총재인 요코하마 교구장 하마오 주교에게 공문을 보내 문규현 신부가 북한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인성회의 승인을 받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하마오 주교에게 쓴 편지를 전달할 방법을 알아보는 도중에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던 메리놀선교회의 캔 부제가 일본에 간다는 소식을 들렸다. 우리는 캔 부제에게 서류를 맡겼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 신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