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종교

[길을찾아서] 몰아친 방북 후폭풍 ‘판문점 귀환’도 난관에 / 문정현

등록 2010-07-21 22:05

1989년 7월26일 정의구현사제단이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 사실을 공표하자,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문 신부와 박병준(맨 앞)·남국현(둘째)·구일모 신부 등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 7월29일 박·남·구 3명을 전격 구속했다.
1989년 7월26일 정의구현사제단이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 사실을 공표하자,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문 신부와 박병준(맨 앞)·남국현(둘째)·구일모 신부 등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 7월29일 박·남·구 3명을 전격 구속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38
1989년 7월25일 도쿄를 떠나 베이징에 도착한 문규현 신부가 평양행 직전 전화를 해왔다. “형님, 저 비행기 탑니다. 사제단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죽으러 가는데 사제단에서는 환호를 합니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니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7월26일 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기자회견을 열어 ‘문규현 신부 입북’ 사실을 공표했다. 더불어 ‘주교에게 보내는 글’에서 주교의 허락 없이 사제를 파견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회견이 끝나자마자, 남국현·구일모·박병준·문규현 신부 등 4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사제단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문규현 신부는 애초부터 휴전협정일인 7월27일 ‘정전’이 아닌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을 주장하며 판문점을 넘어 돌아올 계획이었다. 실제로 방북 사흘째인 그날 그는 임수경 학생과 함께 군사분계선 통과를 시도했으나 저지됐다. 같은 날 남쪽에서도 나를 비롯한 20여명의 사제들이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서울에서 판문점으로 출발했으나 구파발 검문소에서 모두 강제 연행되었다.

그날 주교회의에서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주교회의는 담화문에서 ‘천주교 안의 합법적인 통일 논의의 필요성과 합당성을 주장하고 사제단의 파북 결정은 천주교의 결정과 무관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주교회의는 사제가 방북을 하게 된 것은 임수경을 보호하려는 목적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 김남수 주교회의장(수원교구장)은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임수경과 문 신부의 방북을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젊은 신부의 철없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실정법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교회의 대표의 성명서로 검찰 쪽에서는 원군을 얻은 셈이 되었다. 하지만 규현 신부를 뺀 나머지 신부 3명은 집행유예를 받고 곧 풀려났다.

성명서를 보고, 나와 사제단은 수원교구청으로 김 주교를 찾아가 ‘사제단에 대한 왜곡은 목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그의 성명서 때문에 사제들이 구속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자 김 주교는 “그래서 석방하게 했잖아”라고 답했다. 우리는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주교가 후배 사제를 감옥에 넣을 수도 있고, 빼낼 수도 있다는 발상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따졌다. 그도 화가 나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교황청 리스트에 올라 있으니 주교 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말했다. ‘주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안에서 한국 민중들 속에서, 정말로 통일을 바라는 사제의 양심으로 운동을 하는’ 사제단 신부들의 참뜻을 짐작조차 못하는 말이었다.

그해 9월 중순에는 교황 대사 이반 디아스가 <중앙일보>·<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맹아기다. 다시 말해서 유치원생 정도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데모크라시가 데모크레이지로 바뀐 것 같다. 문규현 신부의 방북은 우리 교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교회의 정치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던 장용주 신부를 비롯한 우리 사제단은 디아스 대사를 찾아가 따졌다.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방북 사건을 정치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자체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니 떠나달라”고 요구했다. 정의구현사제단 명의로 비판 성명서도 발표했다.

한편 북한에서 규현 신부는 사제단에서 부여받은 임무대로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건너오고자 홀로 싸워야 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평양 축전 행사의 하나인 국제평화대행진 판문점대회가 끝난 7월27일 그길로 남한으로 건너오려는 계획은 군사정전위원회 유엔 쪽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다. 북한 쪽에서는 외려 그에게 임수경을 말려달라고 부탁했다. “여보쇼. 내가 임수경을 조정하러 왔소? 나는 임수경의 임자도 모르는 사람이오. 청년 학생들이 통일의 길을 열고자 저러는데 그걸 안 들어주면 어쩌겠소.” 그의 설득에도 북한 당국자들은 난색을 표시했다. ‘휴전선 통과는 남북문제 이전에 유엔이 개입된 국제문제’라며 자꾸 제3국으로 돌아서 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판단으로는 제3국으로 돌아가면 임수경과 자신은 오히려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와 임수경은 7월28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하다 죽어서 넋이라도 넘어가야겠다는 각오였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