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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길을찾아서] 살인·독극물 방류…미군범죄로 민심 들끓다 / 문정현

등록 2010-08-24 18:51

2000년 3월11일 주한미군에 의해 의정부 기지촌 여성 서정만(당시 68)씨 살해사건이 터지자 필자를 비롯한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2000년 3월11일 주한미군에 의해 의정부 기지촌 여성 서정만(당시 68)씨 살해사건이 터지자 필자를 비롯한 ‘불평등한 소파 개정 국민행동’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앞에서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62
1999년 10월 불평등한 소파(SOFA) 개정 국민행동이 출범할 무렵 미군 관련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소파 개정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해 9월29일 <에이피>(AP) 통신은 한국전쟁 도중 발생한 미군의 한국인 양민 총격 사건인 ‘노근리 학살’에 관한 첫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충북 영동군 노근리의 속칭 ‘쌍굴다리 학살사건’ 현장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기사의 요지는 ‘미군이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해 사살하라’는 작전명령을 상부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었다. 2000년 1월6일에는 파주 미군부대의 폭발물 사건과 원주 미군부대의 오폐수 무단방류 문제가 터졌다. 이어 2월19일에는 미군 매카시 상병에 의해 이태원 클럽의 여종업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국민행동은 그동안 각 지역과 현장에서 온몸으로 수집한 ‘미군 범죄 피해’ 보따리를 풀어내면서 본격적인 공론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정부와 미군 당국에 미군 범죄와 환경문제 대책에 대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3월15일 미국을 방문한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협상을 한 뒤 “소파 개정 등의 문제를 가급적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국민행동은 ‘미국의 사과와 소파의 전면 개정 없이는 미 국방장관 코언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용산 국방부 앞 도로에서 한국 국방부 장관을 면담하러 가는 코언 일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코언 장관은 국방부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후문을 통해 들어갔으며 일부 수행 차량은 시위대가 던지는 달걀에 맞기도 했다. 또 국민행동 소속 단체들은 국방부와 미 대사관에 줄기차게 항의 팩스를 보냈다. 그런데 4월25일 외교통상부에서는 미국 쪽에서 협상안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며 회담을 미뤄버렸다.

국민행동은 4월2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소파 개정의 방향을 상호성·호혜성·평등성·주권회복으로 전제한 가운데 ‘3대 전제 사항’을 발표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전면 재검토’ ‘한-미 소파 본협정 및 부속 문서를 포함한 전면 개정’ ‘방위비 분담 특별조치 협정 폐지’가 그것이다. 또 형사 관할권 보장, 민사소송, 공여지 문제, 환경문제,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 미군의 군사기지 환경 및 검역문제 등등 개정 사항을 내걸고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국민행동은 국방부, 미 8군, 정부중앙청사까지 찾아가서 시위를 하고 문제제기를 했다. 지역에서는 대구·원주·인천·군산에서 미군기지 문제로 지역단체장 협의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특히 ‘나라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의 김원웅 의원이 공개토론을 해서 본격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장 전향적인 조처가 나올 것처럼 모락모락 군불을 지피던 한-미 양국이 회담 연기로 김빼기 작전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 범죄만으로 인식되었던 소파의 문제는 이미 환경과 기지 문제로까지 확대되면서 소파 전반의 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국민행동은 2000년 5월 녹색연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미국이 회담을 미룬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그때, 매향리에서 오폭 사건이 터졌다. 또 7월에는 한강 독극물 방류(맥팔랜드) 사건, 9월에는 강원도 원주시 미군기지 캠프 이글에서 항공유 찌꺼기를 무단 방류해 상수원으로 흘려보낸 사실이 드러나 국민적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독극물 방류사건이 폭로된 7월은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들까지 국민행동 사무실과 집회 현장 곳곳에 쫓아와 치열한 취재를 했다. 국민행동 소속 단체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소파 개정과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청산을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국민행동은 왜곡된 한-미 관계와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출범 1년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소파 개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성과는 미군기지로 인해 고통받아온 많은 주민들의 아픔과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구술정리/김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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