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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길을찾아서] “소파 재협상” 시위서 또 연행…갈비뼈엔 금이 / 문정현

등록 2010-09-02 18:58

2001년 1월16일 소파 개정안에 대한 재협상을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집회를 하다 일명 ‘닭장차’(전경버스)에 실린 채 끌려가던 필자가 다른 활동가들과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 원남동에 버려진 필자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2001년 1월16일 소파 개정안에 대한 재협상을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집회를 하다 일명 ‘닭장차’(전경버스)에 실린 채 끌려가던 필자가 다른 활동가들과 통화를 하고 있다. 이날 원남동에 버려진 필자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69
2000년 10월17~18일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제9차 소파 개정 협상’이 열렸지만 8차 협상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다만, 국민행동 대표단의 방미활동을 통해 소파 문제를 알게 된 재미청년단체 30여명이 워싱턴 국무부 앞에서 ‘공정·대등한 소파협정 개정’, ‘환경 파괴와 독극물 방류 즉각 중단’ ‘주한미군 성범죄 중단 및 인권 존중’ ‘매향리 폭격장 폐쇄’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

이어 ‘10차 소파 개정 협상’은 11월말부터 12월11일까지 진행됐다. 정부는 연말 분위기를 틈타 물타기를 하려 했고 여론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사회단체들 역시 정기국회를 겨냥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전념하느라 소파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국민행동은 12월4일 소파 협상 장소인 한국외교협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호각을 불고 풍물을 치면서 난리를 쳤다. 그러자 다음날 한·미 당국은 협상 장소를 정부중앙청사로 옮겼다. 나도 청사로 옮겨가 집회를 하려 했지만 경찰에 묶여 5시간이나 감금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 정부의 태도는 생각할수록 정말 울화가 치밀었다. 너무 저자세이고 굴욕적이었다. 국방부 차관이란 사람은 “노근리·매향리·미군기지·환경문제에 여러 말이 나오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몇만명에 불과하니 우리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게 아니다”라는 망발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에 우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12월28일 정부는 미국과 소파협정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 타결은 국민에게 협상 과정이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한국 정부는 겨우 형사 관할권 문제의 일부 개정만 이루어냈다. 게다가 ‘공여지 침해 방지 규정’은 최악이었다. 국민행동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1월16일, 재협상을 주장하며 시위를 하는데 경찰이 우리를 전원 연행했다. 그날은 눈까지 와서 길이 온통 빙판이었는데 나를 원남동 골목에다 버리고 가버렸다. 그때 넘어져서 안경이 부서지고 온몸이 쑤셨다. 다른 사람들은 난지도에, 김포공항으로 흩어놓았다. 나는 그 몸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농성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다시 주한 미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려는데 몸이 너무 아팠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갈비뼈에 금이 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안 경찰도 미안했는지 정보과장이 작은 자매의 집까지 찾아왔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죄송하다는 편지를 써놓고 갔다. 그날 시위 진압이 강경했던 이유는 알고보니 우리가 시위하던 시간에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기 때문이었다.

결국 12월28일 타결된 소파협정은 2001년 1월18일 대통령 서명까지 완료하고 국회 비준동의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2월8일 국민행동은 국회 연구단체인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과 공동으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소파개정안, 국회는 왜 비준을 거부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지만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했고 일부 의원들은 형식적으로만 반대를 했다. 그 결과 본회의에서 찬성 120표에 반대 27표로 통과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2차 소파 개정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형식적인 개정이고 공여지 문제에서는 오히려 더 개악된 부분이 있었지만 12개 주요 범죄자에 대한 검찰 기소, 환경조항 약간의 변경, 주한 미군기지 일부 반환 따위의 성과가 있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한 소파가 존재하고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말했다. 난 김대중 정부가 무조건 불평등한 소파 개정 투쟁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김 대통령이 6·15 선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미 관계의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파 개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동이 자주적인 반미투쟁으로 나가는 것은 경계했다고 짐작했다.


아무튼 2000년은 개인적으로 미국을 바로 아는 계기가 된 해였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다른 생각 할 여유도 없었다. 집은 집이로되 그야말로 오고가는 길에서 살았다. 그래서 ‘길 위의 신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해 ‘한겨레 통일문화상’, ‘지학순 주교상’, 오마이뉴스 ‘올해 최고의 인물’로 선정되고 감사패도 받았다. 그러나 그런 상들은 개인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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