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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길을찾아서] 전동록씨의 서글픈 죽음…미군은 60만원 위로금만 / 문정현

등록 2010-09-05 20:36수정 2010-09-05 22:20

2002년 6월10일 경기도 파주 미군기지 주변 고압선에 감전당해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숨진 노동자 전동록씨의 장례 행렬이 고양시 일산병원 앞 사거리를 전부 차단한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2년 6월10일 경기도 파주 미군기지 주변 고압선에 감전당해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숨진 노동자 전동록씨의 장례 행렬이 고양시 일산병원 앞 사거리를 전부 차단한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문정현-길 위의 신부 70
내가 전동록씨를 알게 된 것은 2002년 초여름이었다. 동료들과 그를 찾아갔을 때 상황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병원비가 수천만원이나 밀려 있었다. 사건이 알려지며 사회단체가 나서고 변호인도 생기고 약간의 보상을 받게 되었지만 그해 6월6일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01년 7월16일 전동록씨는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뇌조리 미 2사단 캠프 하우스 후문 뒤 대우제판 카메라 공장 증축 현장에서 일했다. 일이 끝난 뒤 남은 철판 조각을 정리하던 중 공장 지붕 2~3미터 위를 지나는 2만2900볼트의 미군 고압선에 철판이 닿아 감전 사고를 당했다. 그 고압선은 미 제2사단 공병여단에서 설치·관리하는 것으로 지하수 모터 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압선이 공장 건물과 지나치게 가까이 있어 감전 위험이 높았는데도 안전 설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건물 주인은 사고 이전부터 미 2사단에 고압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 특히 사고 3일 전에는 미군 전기 담당자 3명이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 공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상태에서 감전 사고가 일어나자 미군은 그에게 60만원의 위로금을 주고 무마하려고 했다.

불평등한 소파(SOFA)개정 국민행동에서 전씨 사건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1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투쟁의 결과로 미군 범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뒤늦게나마 알려지게 된 것이다.

6월7일 전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고양 일산병원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연 시민사회단체들은 ‘고 전동록씨 장례위원회’를 만들었다. 사회단체와 시민들은 전씨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지만 6월10일의 장례식은 초라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그 장례식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 장례식을 치르는 일산병원 앞 사거리를 전부 차단할 만큼 병력이 많이 배치되었다. 아마 정부는 그의 주검을 앞세우고 시위라도 할까 두려워했던 것 같다. 장례식을 마치고 노제를 하기 위해 전씨가 살던 집으로 갔다. 가난한 그의 집과 가족들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미군 앞에 힘없이 쓰러지는 우리 국민의 삶이 서글펐다. 노제를 마치고 벽제화장터로 가는데 장례차가 가는 길만 열어주었다. 화장터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이 진행되었다. 버스 기사는 그렇게 속전속결로 화장을 하는 걸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그날 하필 비가 내렸다. 화장을 마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점심을 먹으려고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 안 사람들이 온통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 오후 3시30분부터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경기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장례식 때마다 인혁당이 생각난다. 인혁당 관련자들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날, 송상진씨 주검을 지키기 위해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전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강남고속터미널로 가는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평화로웠다. 한쪽에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문득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던 날도 그렇게 세상은 무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정현 신부
문정현 신부
6월10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열리던 날도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미군 때문에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 죽었지만 사람들은 분노조차 없었다. 그 경기를 보고 있자니 전씨 가족의 얼굴, 동네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고 미군이 떠올랐다. 세상의 무관심은 너무 냉정하고 서글펐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성모 마리아와 존경하는 스승 예수님의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에도 어느 한 군데 하소연할 데 없었던 제자들의 기막힌 심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바로 3일 뒤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의 궤도차에 깔려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구술정리/김중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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