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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보고 듣고 배운다

등록 2014-02-28 19:49수정 2014-03-01 13:32

2008년 3월16일 종려주일을 맞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모인 성지순례객들이 바위모스크의 황금돔을 배경으로 서 있다. 종려주일은 부활주일 전 주일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해 종려나무로 환대한다. 매년 3만명의 한국인이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AP 연합뉴스
2008년 3월16일 종려주일을 맞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모인 성지순례객들이 바위모스크의 황금돔을 배경으로 서 있다. 종려주일은 부활주일 전 주일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해 종려나무로 환대한다. 매년 3만명의 한국인이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AP 연합뉴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한국 교회의 성지순례
▶ 성지순례에 나선 한국인 관광객들이 탄 버스가 테러를 당해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민간인을 노린 폭탄 테러에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규탄했습니다. 동시에 성지순례객들의 안전불감증 문제도 또 거론됩니다. 지금, 꼭 그곳으로 성지순례를 갔어야 했는지 말이죠. 한국 교회의 성지순례는 안전불감증 외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대안 성지순례를 고민하는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지난 2월16일 늦은 밤 나라 밖에서 폭탄테러 소식이 들려왔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지대인 이집트 시나이반도 타바 국경 부근에서 한국인 관광객 31명, 한국인 여행가이드 2명, 이집트인 버스운전사와 경찰 1명씩 등 모두 35명이 탄 관광버스가 폭발한 것이다.

이집트 언론과 한국 외교부 공식 발표, 생존자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사고가 난 16일 오후 2시40분쯤(현지시각) 버스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수속을 밟기 위해 타바 국경선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어 20대 괴한이 버스에 올라타더니 폭탄이 터졌다. 굉음이 났고 검은 화염이 치솟았다.

사건 발생 몇시간 뒤 트위터를 통해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안사르 바이트 알마끄디스’는 자신들이 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국내외 언론은 군부와 세속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세지는 것을 염려한 이슬람주의자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테러를 벌여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작 현지에 가서 위험한 걸 느껴”

버스에 탄 사람들은 충청북도 진천의 진천중앙교회 교인들이었다. 버스 앞부분에 있던 사람들이 희생됐다. 현지 가이드 제진수(56·이집트 현지 여행사 블루스카이 트래블 대표)씨,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인솔자 김진규(35·목사)씨, 관광객 김홍열(64·여·진천중앙교회 권사)씨 등 한국인 3명과 이집트인 운전기사가 사망하고 14명이 다쳤다.

교인들은 교회 창립 60돌을 기념해 기독교전문여행사인 두루투어의 성지순례 상품으로 10박11일 동안 여행 중이었다. 2월10일 한국을 떠나 터키 관광을 마친 뒤 14일 이집트에 도착했다. 15일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 지역으로 이동해 시나이반도 중남부에 있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방문한 뒤 사건 당일이었던 16일 오후 이스라엘로 건너가 21일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불감증’이 거론됐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형진(가명·56)씨도 이번 이집트 폭탄테러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한 달 전에 다녀왔다. 성지순례 관광객 20명과 함께였다. 사고를 당한 진천중앙교회 교인들의 여행과 같은 코스였다. 김씨 일행도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나이산을 오른 뒤 타바 국경을 통해 이스라엘로 건너갔다. 시나이산은 모세가 출애굽을 하며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땅이기 때문에 성지순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에 비해 유독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김씨 역시 사건 이전까지 중동 지역의 정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시나이반도는) 여러번 다녀온 곳이에요. 이집트나 이스라엘이나 늘 그 정도의 위험은 있어 왔으니까, 한국에서는 별일 없을 줄 알고 출발했죠. 안전을 고려해서 관광객 차량에 이집트 경찰이 동승하거든요. 그런데 정작 현지에 가서는 위험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 달 전에 갔을 때는 베두인(시나이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이 가방을 들어준다고 말을 붙이길래 좀더 불안하게 느꼈죠. 사고를 당한 제진수씨도 초창기에 우리와 거래했던 분인데….”

안전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씨는 정부로부터 위험지역이니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하지 말아달라고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해당 국가에 입국한 뒤에야 휴대전화로 ‘위험한 일이 있을 경우 영사관에 연락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사건을 당한 진천중앙교회 관계자들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험한 곳인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나이반도는 오랫동안 이집트 정부의 치안이 미치지 않는 가난한 우범지대였다. 외교부는 시나이반도 지역은 2012년 2월부터 여행경보단계 3단계(여행제한구역)였다며 넌지시 여행사와 관광객들의 주의 부족을 탓했다. 여행 금지 조처는 나라 단위로 내려지는데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은 허용되기 때문에 금지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사건 이후에 성지순례 관광객들이 이집트를 제외한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스 등 다른 성지순례 상품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집트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던
성지순례 교인들 폭탄테러 당해
비슷한 사건 때마다 안전불감증
거론됐지만 정부로부터 한 번도
위험지역이란 말 들은 적 없어

한국의 성지순례는 좀 남다르다
관광상품으로 상업화됐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쏙 뺀
이스라엘 중심으로만 보고 와
박제된 편협한 신앙심 부추겨

매년 이스라엘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 3만명

뿌리깊은 안전불감증 외에도 한국 교회의 성지순례 문화는 남다른 점이 많다. 성지순례 여행의 상업화,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에 편중된 성지순례, 성경에 적힌 내용은 무조건 수용하는 근본주의의 한계까지 교계 안팎에서 현재 성지순례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한국 교회 성지순례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이들에게서 대안을 들어보았다.

조제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은 점점 성지순례 문화가 여행사를 통한 일종의 ‘종교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지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곳에 다녀와 의미를 찾는 건 모든 종교인이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도 성경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이집트나 이스라엘의 유적지를 직접 다녀오면 성경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성지순례가 언제나 경건한 마음만 갖도록 진행되지는 않아요. 순례의 의미보다 관광·여행 위주의 상품이 너무 많습니다. 괜찮은 현지 가이드가 있는 여행사의 상품을 고르지 않는다면 일반 관광이 돼버립니다. 몇년 동안 돈을 모아서 다녀오는 관광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여행인지 따져보는 게 중요합니다.”

여행업계에서는 현재 성지순례를 가는 관광객은 100%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라고 전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돌아보는 코스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성지순례 여행상품의 대표 코스로 꼽힌다. 이들 지역이 주로 구약성서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이스라엘 요단강, 갈릴리 호수, 겟세마네 동산 등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일대를 둘러보며 예수의 일생을 따라가는 여정은 상품마다 거의 비슷했다. 이집트 관광청은 지난해 한해 동안 한국인 2만2558명이 입국했고 이 중 30~40%를 성지순례 관광객으로 추정했다. 전국이 성지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에는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 3만명이 다녀갔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성지순례 상품은 교회 단위의 단체관광객이 주로 예약한다. 고객을 많이 모아야 하기 때문에 국내 여행사는 교회를 상대로 인솔자의 여행경비를 빼주는 식의 영업을 하기도 한다. 계약을 하면 현지 여행사에 하청을 준다. 현지 여행사는 현지에서 공부하는 목사나 신학생을 가이드로 고용한다.”

최창모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중동연구소 소장, 이스라엘사 전공)는 이스라엘을 향한 한국 교회의 일방적인 사랑에 비판적이다. 이스라엘을 다녀와야 성지순례를 다녀온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성지순례가 ‘현재를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현재가 없고 과거만 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예루살렘을 포함해 여러 민족의 삶이 살아 있는 오늘의 이스라엘에서 유대민족의 역사만 편향적으로 보고 온다는 지적이었다.

“한국 사회의 이스라엘 편들기 역사는 오래됐어요.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이스라엘의 키부츠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나 이스라엘 여군을 안보의 상징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대표적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막연히 좋은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있어 왔는데, 교회의 성지순례를 통해 이 점이 더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성서의 배경이 되는 곳의 자연지리뿐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 2000년 동안의 인문지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성지순례는 대부분 2000년 전 박제화된 이스라엘 중심 유대민족의 역사와 유적만 알고 가니까 문제예요. 그 땅에 사는 다른 민족,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거죠.”

팔레스타인에서 본 또다른 하나님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며 대안 성지순례를 고민해온 이윤희 한국와이엠시에이(YMCA) 생명평화센터 사무국장은, 현재의 이스라엘 중심의 성지순례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해방과 자유의 열망이었던 성서 읽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인이 머무르는 지역과 이스라엘 점령 지역이 그리 멀지 않아요. 이스라엘에서 허가받은 현지 여행사나 가이드와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까 현지 팔레스타인인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실제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나보면 또다른 하나님을 볼 수 있거든요. 마치 일제 때의 우리 민족이 그렸던 ‘해방과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현실을 접하면 기독교 시오니즘과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반추할 수 있는데, 지금 성지순례 문화로는 그럴 기회 자체가 없습니다.”

2009년 9박10일 일정으로 이스라엘 전역을 성지순례한 서울의 이미애(가명·60)씨의 경험도 비슷한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씨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관광객들은 이스라엘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허락 없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해요. 운 좋게 우리 팀이 탄 버스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있는 성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갈 수 있었어요. 버스 운전기사님이 팔레스타인 사람이라 가능했던 거죠. 그 지역에 들어가자마자 한국 영사관에서 5~10분마다 ‘위험지역’이라고 문자가 왔어요. 가보고 나니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차별받고 사는지, 테러의 위험이 왜 그리 높은지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씨가 간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구약성서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산이다. 그리심산은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팔레스타인의 고대 명칭)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의 죄가 가득하니 멸절시키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축복이 있다고 선포한 산이다. 에발산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인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될 경우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저주의 말씀을 한 곳이다.

성지순례의 여러 문제점 중에,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받아들이는 ‘성경근본주의’가 성지순례를 강조하는 문화를 강화시켜왔다는 분석도 있다. ‘성경의 땅’인 성지를 신격화할수록 성지순례지의 성역화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구교형 복음주의교회연합 사무총장은 지금 같은 문화로는 성지를 둘러본다고 해서 제대로 된 신앙을 고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성서에 쓰여 있는 곳은 다 가보는 거예요. 예수가 태어나신 곳, 말씀하신 곳, 심지어는 마리아가 예수님이 태어날 것이라고 천사에게 계시를 받았던 곳도 가죠. 사실 성경에 나온 장소가 그쯤인 것만 알지 정확히 어딘지 모르는 곳도 있는데,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에는 이미 교회나 성당을 다 세워뒀어요. 때로는 기부를 권하기도 하고요. 그런 곳을 둘러보면서 그 땅에만 배타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런 마음이 참된 신앙일까요?”

신앙이 머무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종교가 추구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구현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유시경 대한성공회 신부는 종교적 근본주의야말로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기독교의 발상지, 유적지로서의 의미가 물론 있지만 그곳이 과연 영원히 ‘성지’냐는 겁니다. 오히려 그곳을 찾아가는 종교인의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위험한 지역임을 알면서도 꼭 가야 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기독교인들 심장 한 부분에는 하나님의 보우하심 같은 선민사상, 편협한 신앙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것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신앙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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